9월3일 저녁 인천시 서구 한 상가 건물에 위치한 정신의학과 병원에서 불이 나 입원 환자 58명이 대피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사고 수습이 이뤄지는 동안 입원 환자들이 1시간 이상 길거리에 방치됐다. 화재 소식을 듣고 찾아온 보호자들이 자신의 가족이 안 보인다며 불안해하는 모습으로 한동안 소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병원은 2020년 5월 코로나19 확산 초기, 집단 격리 조치가 내려진 곳이기도 하다.
“저 금방 다녀올게요 .“ 아파트 엘리베이터 문이 다 열리기 전 택배 박스를 든 권서우씨(가명)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투둑‘ ‘찰칵’. 박스를 놓고 배송 인증 사진을 찍은 다음 뒤돌아 달린 권씨가 엘리베이터에 들어서는 순간, 닫히는 문에 그만 몸이 부딪히며 울리는 꽤 둔탁한 소리가 건물 내에 퍼졌다. 그의 스마트폰은 0시2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쿠팡 퀵플렉스(쿠팡 CLS와 계약한 특수고용직) 권서우씨는 쿠팡 새벽 배송 일을 하고 있다. 처음 이 일을 할 때 노동강도가 엄청났던 그 느낌을 잊지 못한다. 저
국회가 마침내 개원식을 열었다. 제22대 국회의원 300명이 임기를 시작한 지 95일 만이다. 9월2일 국회 개원식에 윤석열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 없이 진행된, 가장 늦은 국회 개원식’이 됐다. 이날 대통령 불참으로 국회의장석 앞 단상은 비었다. 그 풍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본회의장 2층 참관석은 개원식에 초청을 받은 특별 손님 150명이 가득 메웠다.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는 말로 개원사를 시작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정치가 할 일도, 대한민국이 나아가는 힘도 국민의 삶에서 나온다”
“어른들은 저희에게 항상 어린이답게 행동하라고 하지만 정작 중요한 책임에 대해서는 저희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기후위기는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당장 모든 사람이 겪고 있는 현실입니다. 앞으로 저와 같은 어린이들이 헌법소원에 나서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번 판결이 더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8월29일 헌법재판소는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담지 않은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31년부터 2049년까지 국가가 감축할 온실가스 배출량의 목표치를 설정하지 않아 국민의 기
8월20일 한·미 연합연습인 ‘을지 자유의 방패(UFS)’의 일환으로 국가중요시설 합동 대테러 훈련이 열린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KSPO DOME). 경기장 상공에 드론이 등장하면 대공포와 재밍(전파방해) 조치팀을 투입해 낙하시키는 훈련이 시작됐다. 드론이 대공포를 맞고 추락하는 것처럼 사실감을 높이고 싶었던 군은 드론에 줄을 묶어서 힘껏 당겼다.대형 드론은 생각보다 힘이 셌다. 상하좌우로 요동칠 뿐 쉽사리 추락하지 않았다. 훈련에 참가한 장병 머리 위를 위험천만하게 휘젓고 다녔다. 그 중 한 대가 경계를 서던 장병과 부딪친 뒤 추
연신 땀을 닦던 사람들이 새카맣게 탄 공장 앞에 멈춰 섰다. 아리셀 참사 발생 55일째인 8월17일, 폭염에도 불구하고 전국 50개 도시에서 ‘8·17 죽음과 차별을 멈추는 아리셀 희망버스’에 참가한 이들이 피해 가족들을 응원하기 위해 참사 현장으로 모였다. 산재 피해 유가족, 참사 유가족, 대학생, 종교계·문화예술계·노동계 단체 회원 등이 탄 대형 버스 60대와 개인 차량 40대가 오후 1시께 공장 앞에 속속 도착했다.6월24일 노동자 23명이 죽고 8명이 다친 경기도 화성 아리셀 리튬전지 공장 2층 건물은 형체만 겨우 남아 있었
“할머니~ 빨리 와서 안아줘유.” 8월7일 충남 당진시에 거주하는 김정옥씨(82)의 집에 일곱 살짜리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김씨는 “잉~ 그려” 하고 방석에 놓여 있던 인형을 안는다. “나는 우리 효돌이가 최고 좋아. 할머니는 효돌이 없으면 행복하지가 않아”라고 말하자, 볼에 빨간빛이 들어온 인형이 말했다. “저와 같이 놀이하는 거 잊지 마세요. 저는 할머니를 위해서 언제나 여기 있을게요.”7년째 홀로 살던 김씨의 집에 효돌이가 찾아온 건 지난해 9월이다. 효돌이는 충남 당진시에서 고독사 위험이 있는 130가구에 지급한
제79주년 광복절인 8월15일, 서울에서는 광복절을 기념하는 행사가 동시에 두 군데에서 진행됐다. 정부가 주관하는 행사와, 광복회와 독립운동단체연합이 별도로 개최한 행사이다. 정부와 독립운동단체가 따로 광복절 기념식을 진행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친일 뉴라이트 인사’로 논란이 된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 임명에 반대하며 정부 주관 행사에 불참을 선언했던 광복회는 56개 단체로 구성된 독립운동단체연합과 함께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광복절 기념식을 열었다. 독립운동가 후손을 비롯해 광복회원 및 독립운동단체 회원 등 참석자 5
8월7일 정오,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 대사관 앞 도로는 내리쬐는 한여름 햇볕으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의 정기 수요시위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좁은 도로 너머에 온갖 친일·수구 단체들이 모여들어 소녀상 철거를 주장하는 집회를 열었다. 어떤 단체는 일본말과 한국말을 섞어가며 알 수 없는 고함을 질러대다가 목이 쉬면 “애앵~!” 사이렌을 켜놓기도 했다.질서 유지를 위해 나온 경찰들도 더위와 소음에 지치기는 매한가지. 집회 중간중간 소나무 그늘로 피신해 더위를 식혀보지만 그것도 잠시뿐이
그늘 한 뼘 없는 한낮의 땡볕은 그대로였다. 소금기 머금은 바람은 여전히 끈적였고 고개를 들면 보이는 건 끝없이 무성한 잡초뿐. 진흙탕 대신 단단한 땅을 밟을 수 있다는 점만 달라진, 1년 전 158개국 4만3000명이 다녀간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야영장의 현재 모습이었다.2023년 8월1일부터 12일까지 전북 부안군 새만금에서 개최된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대회’는 시작과 동시에 무더위로 온열질환자가 속출했다. 부족한 시설과 위생 문제로 쏟아지는 비판에 조직위를 대신해 정부가 직접 나섰지만 사태는 쉽게 수습되지 않았다.
약 235조원. 하루 만에 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 사라진 돈이다.8월5일 코스피 지수는 이날 직전 거래일 대비 234.64포인트(8.77%) 하락한 2441.55로 거래를 마쳤고, 코스닥 지수도 88.05포인트(11.30%) 내린 691.28에 장을 마감했다. 하락률로는 2008년 10월24일(-10.57%) 이후 16년 만에 최대다. 이날 오후 2시14분께 지수가 8% 넘게 떨어지며 유가증권시장에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돼 거래가 20분간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이날 코스피의 시가총액은 1997조 7450억원으로 하루 만에 약 192
지적장애가 있는 김예준 군(10)은 홍미영 활동지원사(가명, 57)에게 한글을 배웠다.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서사원) 소속인 홍씨는 지난 2년 7개월 동안 주 6일씩 예준이를 돌봤다. 아빠, 할머니와 사는 예준이를 엄마처럼 세심하게 챙겼다. 체육을 좋아하는 예준이를 위해 구청에서 지원하는 검도와 줄넘기 수업도 등록해 매번 데려갔다. “장애 아이를 돌볼 때는 기다려주는 게 중요해요.” 홍씨 덕분에 예준이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늘었다. 무인 계산대를 사용하고, 도로에서는 주변에 차가 있는지 살필 줄 알게 됐다. 하지만 8월1일부
“눈 감아야 보이는 조국의 하늘과 어머니의 미소, 그 환한 빛을 끝내 움켜쥐지 못한 굳은살 배인(박인) 검은 두 손에 잊지 않고 진실을 밝히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2017년 8월12일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 추진위원회’는 서울 용산역 광장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우며 머릿돌에 이렇게 새겨 넣었다. 일제강점기 용산역은 일본, 사할린, 남양군도, 쿠릴열도 등 강제징용을 가는 조선인들이 마지막으로 밟은 고국 땅이었다. 그 역사의 장소에 세워진 ‘강제징용 노동자상’은 ‘평화의 소녀상’을 만든 조각가 김서경·김운성씨가 제작했다. 오른
“미얀마 사람들이 우리 미얀마 내에서 군부독재 없어야 한국처럼 민주 나라도 세울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한국 국민들이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관심을 많이 가질 수 있도록 우리 미얀마 국민들이 이 자리에 모여서 집회하고 있습니다. 광주도 ‘잊지 말아요’ 말 있는 것처럼 우리 미얀마도 잊지 말고 우리 미얀마 민주화를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7월21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평택역 광장에 서툰 한국어가 울려 퍼졌다. 힐끔힐끔 눈을 돌리며 지나치는 시민들 사이에서 마이크를 쥔 조모아 한국미얀마연대 대표의 목소리는 더욱 커져갔다.
2022년 7월22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거제옥포조선소 1도크에 있던 0.3평 공간의 철제 구조물이 해체됐다. 하청·비정규직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그 안에 스스로를 가뒀던 조선소 하청 노동자 유최안씨가 병원으로 이송된 후였다. 그가 31일 동안 살았던 철제 구조물에는 손으로 쓴 종이가 붙어 있었다.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우리는 살고 싶습니다.’2년이 지난 지금 ‘조선소 유최안들’의 삶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파업 종료 2년을 맞은 7월22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집회를 연 금속노조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
가족 사이에서 ‘이예람‘은 일종의 금기어였다. 공군 제20전투비행단에서 근무하던 이 중사는 2021년 3월2일 상관 장 아무개 중사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피해 사실을 군에 알렸다. 하지만 군의 거듭된 은폐와 외면 속에 이 중사는 “조직이 나를 버렸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2021년 5월21일 세상을 떠났다.피해 사실이 알려진 뒤 사망하기까지 81일. 그간 군이 이 중사에게 가한 건 끊임 없는 2차 가해뿐이었다. 그 모진 시간을 홀로 견뎌냈을 생각에 가족은 '이예람’ 세 글자에도 고통에 떨었다.이후 3년2개월간 가족은 모든 걸 걸고 싸
“뭘 사지도 않는디 꼭 와서 들여다봉께, 고마와.”전남 영광군 묘량면 당산마을 주민 박정임씨(87)가 경로당을 방문한 김동광 사회복지사(35)에게 말했다. ‘동락점빵 사회적 협동조합(동락점빵)’에서 운영하는 1t짜리 이동형 마트 트럭 ‘이동점빵’을 몰고 매주 2회, 마을 42곳을 누비는 김씨는 땀이 미처 식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인구 1694명이 사는 전남 영광군 묘량면의 면적(44.7㎢)은 서울시 강남구 면적(39.5㎢)보다 넓다. 하지만 이곳에는 식료품 소매점이 단 한 곳도 없다. 유일한 구멍가게는 2010년에 문을 닫았다.
“우리의 마음은 슬픔과 분노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난 10개월간 학살을 저질러왔는데 그 대표적인 학살이 엊그제 칸유니스의 알마와시 난민촌 공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자지구 주민들은 혼자가 아니며 이런 학살은 우리를 더 강하고, 더 단호하고, 더 확고하게 만들 뿐입니다.”7월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인근의 청계광장을 찾은 팔레스타인인 나심 씨는 기자회견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7월13일 이스라엘 군이 팔레스타인 피란민이 모여 있는 가자지구의 남부 도시인 칸유니스를 공습해 90여 명이 숨지고 300여
서울에 첫 호우 특보가 내려진 7월17일 오전, 서울 중구 청계광장 조형물(소라탑) 아래에 마련된 ‘채 상병 순직 1주기 추모 시민 분향소’가 시민들을 맞이했다. 지난해 7월19일 경북 예천 내성천에서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 급류에 휩쓸려 숨진 채 상병의 사진이 분향소 중앙에 놓였다.채 상병이 순직한 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사망 원인과 책임자를 규명하는 일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제21대와 제22대 국회에서 통과된 두 번의 ‘채 상병 특검법’은 대통령에 의해 모두 거부되었고(재의요구권 행사), 채 상병 순직사건에 대한 첫 수사기관의
7월9일 오후 서울시 중구 태평로 TV조선 앞. 국민의힘 당대표 선출을 위한 첫 TV 토론회를 앞두고 어제의 동지들이 다시 모였다. 방송사 앞마당을 선점한 한동훈 후보 지지자들은 천막을 설치하고 ‘당대표는 우리 손으로’라고 쓰인 현수막을 내걸었다. 방송차를 동원해 한동훈을 연호하며 분위기를 띄울 무렵, 태극기와 함께 ‘언제나 원희룡’이라고 쓰인 대형 깃발을 휘날리며 호피 무늬 복장의 시민이 등장했다. 윤석열 대통령 부친상 때 같은 복장으로 조문을 갔다 쫓겨난 인물이다. 그는 두 손을 모아 목청껏 “원희룡”을 외쳤지만, 상대의 스피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