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조형근 지음, 한겨레출판사 펴냄“우리는 서로 얽혀 있고 세상은 단순하지 않다.”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한반도와 여러 나라 사람들이 얽힌 역사를, 18개 에피소드를 통해 살핀다. 인물과 사건, 역사적 사건과 문화예술을 종횡무진 오간다. 예컨대 영화 〈콰이강의 다리〉를 이야기하다가, 1940년대 그 다리 건설 현장에 실제로 있었던 조선인 1000여 명의 존재를 말한다. 그들은 일본군의 지휘를 받는 포로감시원으로 일했다. 저자는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을 악마·희생자 식의 이분법으로 대하
내성천이라는 강이 있다. 경북 봉화에서 발원하여 영주, 예천, 문경을 지나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모래강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원래 모래강이었다. 지금은 4대강 사업으로 낙동강 본류 강바닥이 낮아지고 4대강 사업 마지막 댐인 ‘영주댐’이 들어서면서 모래와 물이 흐르는 줄기를 틀어막는 바람에 모래강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본류 바닥이 낮아진다는 의미를 잠깐 설명해야 할 것 같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낮은 곳의 강바닥이 더 낮아지면 어떻게 될까? 낮은 곳으로 가려는 물살은 높은 곳에서부터 빨라진다. 빨라진
1989년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PC라는 새로운 기계 때문에 세상이 들썩이고 있었다. PC를 제대로 다루려면 책으로 공부해야 했다. 대학에 입학하자 ‘인터넷’을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그 정체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힘들었던 일이 기억난다. 당시 일반인들은 아직 인터넷이 뭔지 알지 못했다. 곧이어 ‘윈도’라는 새로운 PC 운영체제가 세상에 나왔고, ‘마우스’라는 낯선 장치를 사용해야 했다. 머지않아 정보를 얻거나 게임하는 장소였던 인터넷에서 물건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야후’가 독점하던 검색시장에 ‘구글’이라는 새로운 검색엔진이
전세사기 피해자를 취재하면서, 내 앞에 마주한 이 사람을 괴롭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쩌다, 왜, 그 뒤 어떻게’ 따위의 질문을 던져야 해서다. 사기 피해를, 게다가 전세사기처럼 쉽게 ‘개인의 잘못’으로 취급되는 피해를 털어놓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물을 수밖에 없다. 더 구체적으로 알려야, 더 많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믿어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도처에서 벌어지는 전세사기가 어떻게 시작되는지, 왜 문제적인지 알기 위해 꼭 필요한 책이다. 부제인 ‘91년생 청년의 전세사기 일지’처럼 한 개인의
4년 전 겨울. 아내와 난데없이 쌀케이크에 꽂혀 서울 성수동의 한 카페에 자주 갔다. 그날, 그 토요일 저녁에도 어김없었다. “오늘은 콩가루 쌀케이크를 먹을 거야.” “그럼 난 흑임자 먹어야지. 나눠 먹자.”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길모퉁이 왼쪽으로 돌아섰을 때 아내가 비명을 질렀다.“어머, 쟤 어떡해, 어떡해?”치즈색 길고양이가 차도에서 뒤집혀 버둥거리고 있었다. 4차선 도로의 찬 길바닥. 피가 흥건했다. 일어나려 힘써봐도 맘처럼 안 되는 듯했다. 판단할 틈이 없었다. 다른 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대로 두면 두 번, 세 번 치일
안 읽어도 읽은 것처럼 착각하는 고전 중에는 〈1984〉나 〈동물농장〉이 있지 싶다. 줄거리는 아는 듯한데, 막상 읽었느냐고 묻는다면 얼버무리게 되는.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그런 사람들이 먼저 읽으면 좋다. 술술 읽히고, 오웰이 어떤 사람인지 깊고 빠르게 찔러오기 때문이다. 소설이란 진실과 창작 사이를 이리저리 에둘러 가는 법이라 작가의 의도를 눈치 채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는 그런 게 없다. 분노와 고통스러운 시선이 고스란히 드러난다.이 책은 1937년, 그러니까 오웰이 스페인 내전에 참여하려
낮 최고기온이 35℃였다. 노트북을 비롯해 바리바리 가방을 싸는 편인 안담 작가도 이날은 노트 한 권만 챙겼다.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그의 손 위치가 자연스러웠다. 보통은 사진 찍을 때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이다. 가끔 연극배우가 되기도 하는 그는 무대 위에 선 배우의 손을 보면 그 사람의 경력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우스운 것은 무대에서, 슬픈 것은 글에서 다룬다’는 작가는 요즘 ‘은평구의 개 산책자’로 자신을 소개한다. 개가 탈이 난 후부터는 산책을 피한다는 한낮, 〈시사IN〉 편집국에서 안담 작가를 만났다.최근 출
한국 힙합 신에는 미국이나 유럽 힙합 신에선 접하기 어려운 이슈가 몇 개 있다. 랩 레슨 논쟁은 그중 하나다. 일반 대중이라면 랩을 가르치고 배우는 행위가 왜 문제일까 싶겠지만, 힙합이란 특수한 문화 안으로 들어오면 상황이 좀 달라진다. 다른 분야와 달리 랩은 스스로 영감을 얻어 습득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이는 랩이 생겨난 독특한 과정 때문일 것이다. 랩은 1970년대 파티장에서 탄생했다. ‘힙합의 아버지’ 디제이 쿨 허크(DJ Kool Herc)의 옆에서 호스트를 봤던 ‘최초의 래퍼’ 코크 라 록(Coke La Roc
인터넷 서점에서 ‘엄마표’라는 단어로 검색을 해본 적이 있다. 도대체 ‘엄마표 영어’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해본 일이다. 엄마표 영어와 관련된 책이 가장 많았고, 엄마표 과학, 엄마표 종이접기도 있었다. ‘아빠표’도 검색해보았다. 어쩐지 육아에 관한 한 엄마와 비슷한 책임이 있어 보이는 아빠에 관한 상상력은 빈곤했다. 〈엄마라는 이상한 세계〉를 읽으며 당시 생각이 났다. 저자가 ‘부모라는 기계적 중립의 단어를 버리고 엄마를 전면에 내세운 이야기를 쓰고자’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조기 진통으로 임신 29주 만에 세상에 나온 저자의 아이
친일파의 재산종성 지음, 북피움 펴냄“친일에 관한 오해 중 하나는 ‘친일은 부득이했다’는 논리다.”친일파들은 친일 행위로 얼마나 이익을 얻었을까? 이 책은 이런 의문에서 출발한다. 대표적 친일파 30명의 ‘친일 재산’과 ‘친일 연대기’를 사료와 당시의 신문기사, 증언과 회고록 등을 토대로 파고들었다. 이완용은 외교권 박탈을 담은 을사늑약이 체결된 이후, 관직에서 물러나면서 퇴직금까지 챙겼다. 죽기 전해인 1925년 친일파 민영환에 이어 한국인 부자 2위에 올랐다. 이토 히로부미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친일파 민병석은 1933년 당시 돈
(제882호 “이걸 먹고 우선 잠을 자둬”에서 이어짐) 괴테는 이탈리아 반도를 북에서 남으로 훑고 내려가는데, 계절풍에 대한 언급이 몇 번 있다. 특히 ‘시로코’와 ‘트라몬타나’를 섬세하게 겪는다. 당시 이런 계절풍에 관한 깊은 연구는 없었을 것 같다. 괴테는 단신으로 반도의 북에서 남으로 이동하며 어떤 때는 계절풍의 도움을 받아 온화한 날씨를 얻기도 하고, 어떤 때는 독일과 다른 날씨에 생경한 체험을 하기도 한다. 트라몬타나는 알프스에서 내려오는 골바람이다.유럽 지도를 보면, 알프스는 이탈리아 북부 지역이 거의 머리에 이고 있는
내 소유의 집이 있었다면 식물 임시 보호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재개발 단지에서 구조한 식물 대부분은 내 정원의 한 부분이 되어 자리 잡고 있었을 테니까. 나는 남의 집에 세를 주고 사는 형편인 데다 공간마저 한정적이어서 재개발 단지마다 끊임없이 버려지는 식물을 모두 품을 수 없었다. 더 좋은 집에 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식물을 나누게 되었다. 이 과정을 되짚어보니 이른바 ‘임시 보호’였다.식물을 키우다 보면 정원을 욕망하게 된다. 나의 정원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종종 생각해본다. 정원을 가꾸는 일을 누군가는 마음을 가꾸는 일이라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마오쩌둥 정신’을 언급할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다. 마오쩌둥은 외국의 자본은 물론 과학기술까지 거부하는 ‘중국식 제조 시스템’으로 미국을 추월하겠다고 설치다가 수천만 명의 아사를 초래한 사람이다. 농촌에 인민공사(토지와 농기구를 공유하고 식사도 공동 식당에서 해결)를 설치하고, 수많은 지식인들을 외국 스파이로 몰아 잔혹하게 숙청했다.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주자파(자본주의를 추종하는 세력)로 낙인찍혀 박멸당했다. 그러나 시진핑 치하의 중국은 사실상 자본주의 대국으로 세계에서 빈부격차가 가장 격심한 나라
달의 뒷면에는 ‘남병철’이 있다. 8월14일 국제천문연맹(IAU)은 심사를 거쳐 달에 있는 한 충돌구(Crater)에 ‘남병철 충돌구(Nam Byeong-Cheol Crater)’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남병철(1817~1863)은 조선 후기의 천문학자다.국제천문연맹에 이 충돌구 명명을 신청한 곳은 경희대 우주탐사학과의 ‘다누리 자기장 탑재체 연구팀(연구책임자 진호 교수)’이다. 이 충돌구에 이름을 붙일 만한 과학적 의미가 있다고 판단한 연구팀은 한국천문연구원의 추천·협의를 거쳐 ‘남병철’이라는 이름을 신청했다. 연구팀의 박현후 연구
펭귄각종과학관장. 이정모 관장의 명함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2023년 2월 국립과천과학관장 직에서 물러난 후 경기도 일산에 개인 사무실을 내면서 딸의 조언대로 이름을 붙였다. 학창 시절부터 별명이 펭귄이었다. “이번에는 작명에 실패한 거 같다. 사람들이 펭귄각종과학관 입장료가 얼마냐고 자꾸 묻는다(웃음)”그는 자주 ‘털보 관장’으로 불린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서울시립과학관장, 국립과천과학관장으로 12년 동안 일했다. 〈차이나는 클라스〉 〈어쩌다 어른〉 같은 방송 프로그램에서 과학 강연을 많이 해서 대중적으로 알려졌으니 그런 애
‘정치적 올바름은 어떻게 우리를 침묵시키는가’라는 부제를 단 르네 피스터의 〈잘못된 단어〉(문예출판사, 2024)에는 다음과 같은 ‘취급주의’ 문구가 붙어 있다. “책의 일부 사례는 한국의 진보 진영에서 상당한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럼에도 구호로만 그치는 ‘정치적 올바름’이 아닌, 현실적인 변화를 이끌 방안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꼭 한번 읽어보기를 추천한다(송채경화 〈한겨레〉 기자).”PC로 줄여 쓰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은 인종·성별·종교·성적 지향·장애·직업 등과 관련
“맴맴맴맴매~앰” 드디어 매미가 땅에서 나와 노래를 하기 시작했어요! 아파트에서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 돌아온 거지요. 여름이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매미 소리 때문에 잠도 설친다지만 매미를 좋아하는 우리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일 아침 아파트로 출근을 합니다. 껍질을 벗고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매미는 사냥하기도 쉬운데 참매미, 애매미, 쓰름매미 등 종류도 다양해서 골라 먹는 재미가 있어요. 직박구리와 곤줄박이, 새호리기처럼 매미를 좋아하는 경쟁자도 많지만 매미는 언제나 넘쳐나니 크게 경쟁할 필요는 없어요.나는 호매실
역사학은 자료에 기반한 학문이다. 자료가 무척 중요하다. 북한사 연구자에게도 마찬가지다. 먼저 〈노동신문〉 같은 북한 공식 자료가 있다. 검열을 통한 자료이기 때문에 특정 사실을 확인하는 정도의 가치가 있다. ‘1급 자료’는 아니다. 두 번째는 한국전쟁 때 미군이 북한 지역에서 노획한 회의록 등 문서들이다. 당시 미군은 노획 자료를 수집·관리하는 ‘자료 부대’를 운영했다. 이 노획 문서는 “연구자가 평생 다 읽지 못할 정도로” 분량이 방대하다. 이 자료는 한국전쟁 전까지 북한 내부의 실상을 보여준다. 그다음 시기는? 북한 주재 소련
열대야의 밤에 이 글을 쓴다. 온난화로 날씨 변동이 심각해지면서 기후위기 관련 서적과 정보는 넘쳐나는데, 사람들은 점점 더 냉소적인 비관주의자가 되어가는 것 같다. 텀블러를 들고 다니고, 승용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세상이 변하지 않는 것 같기 때문이다.기후위기에 관해 크게 두 가지 담론이 대립한다. 하나는 지금처럼 살면서도 제도(탄소세 등)와 기술(탄소포집 등)로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이른바 ‘탈성장’을 통해 생태와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의 이윤 활동을 금지하고, 물질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A4 한 장을 쓰는 힘안광복 지음, 어크로스 펴냄“무엇보다 나는 글을 못 썼다.”저자는 28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쳐온 철학 교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다. 그는 많은 학생들이 글쓰기를 두려워하고 어려워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고 듣고 읽은 내용을 나만의 생각으로 명쾌하게 정리하는 ‘글쓰기 근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글쓰기 근력을 기를 방법으로 ‘독서 기록’을 제안한다. 한 편의 독서 기록을 통해 읽기와 쓰기를 연습할 수 있다. 글쓰기에 대한 책인데 독서법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의 독서법 가이드는 구체적이다.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