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과 구글 드라이브에 사진 파일이 무한히 저장돼 있지만 여전히 출력된 가족사진을 지갑 속에 넣고 다닙니다. 전쟁이 나거나 큰 재난이 일어 전기가 끊기고 디지털이라는 것이 무용지물이 되는 디스토피아를, ‘잠들기 직전 쓸데없는 생각 타임’에 자주 떠올립니다. 그런 상황에서 혹시라도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악몽 같은 일을 겪었을 때 가족들 얼굴이 담긴 사진 한 장이 품에 없을까 봐 공포에 떱니다. 저는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것의 가치를 믿는 편입니다.“대한민국에서 종이 매체가 단 하나 살아남는다면 그것은 〈시사IN〉일 것이고, 또 〈
“어느 병원을 가셨죠?(나경희 기자)” “울화통이 터집니다(이은기 기자).” 이번 주 커버스토리를 쓴 두 기자에게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들은 소감을 물었을 때 나온 대답이다. 윤 대통령은 8월29일 국정 브리핑 및 기자회견에서 의료 공백 위기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의료 현장을 가보시는 게 제일 좋을 거 같습니다. 지역의 종합병원들 이런 데 좀 가보시고.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일단 비상진료체제가 그래도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고···.”〈시사IN〉 이번 호 커버스토리에는 대통령이 말한 그 ‘의료 현장’ 이야기를 담았다.
어린 시절 여의도 면적이 몹시 궁금했다. TV 뉴스만 틀면 그 단어가 흘러나왔다. 수해 지역 규모든 도시개발 예정 용지 면적이든 웬만한 땅 넓이는 모두 ‘여의도 면적의 몇 배’로 표현됐다. 비수도권 농촌 거주 어린이는 그 표현이 마치 ‘콩 한 되’ ‘쌀 한 섬’처럼 준(準)공식적으로 쓰이는 도량형 단위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어떤 장소가 얼마나 넓은지를 가늠하고 남에게 설명하고 싶을 때면 계산기를 옆에 끼고 꼭 여의도 면적(2.9㎢)으로 나눠보곤 했다. 여의도 땅을 한 번도 밟아본 적이 없는데도.나중에야 깨닫게 됐다. 그냥
‘“너희들이 만약 장래에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조선에 용감한 투사가 되어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술 한 잔을 부어놓아라…” 1932년 12월19일 윤봉길 의사. 윤봉길 의사의 그 깊은 뜻을 담은 술 한 잔 올려드립니다.’ 3년 전인 2021년 8월15일, 누군가의 페이스북 공식 계정에 올라온 게시글이다. ‘#광복절#윤봉길#안중근#김구’라는 해시태그도 달렸다.그 누군가란, 윤석열 대통령이다. 당시 국민의힘 대선 예비주자였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광복 제76주년을 맞아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독립운
외갓집에 가면 외할아버지는 늘 포도를 따주셨다. 마당 수돗가 위 지지대 사이로 포도 넝쿨이 자라 있었다. 절뚝이는 다리로 걸음을 옮기신 다음, 넝쿨 속에서 최대한 잘 익은 놈을 골라내 철가위로 싹둑, 자르는 외할아버지의 손가락 마디가 매우 검고 두꺼웠던 모습이 기억난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고등학생일 때 돌아가셨다.외할아버지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노동자였다는 사실은 한참 뒤 알게 되었다. 홋카이도(북해도) 하코다테 항구라고 했다. “네 외할머니 말론, 끌려갔다가 집에 돌아왔을 때 머리에 이가 버글버글해서는 한마디 말도 없이, 밥 주니
“한 마디로 토끼예요, 토끼.” 화물차 기사 김원식씨는 말했다. 여느 날처럼 그날 그는 하루 24시간 중 2시간 쪽잠을 잤다. 해가 떴다가 졌다가 다시 뜨는 초현실적 시간 흐름 속에서, 그의 화물차 조수석에 앉아 받아 적은 말들에 ‘일감’ ‘콜’ ‘불안’ ‘초조’와 같은 단어들이 쌓였다. “사람이 일을 너무 많이 하면 양쪽 귀 뒤에서 진물이 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그는 평생을 제대로 ‘쉬어본 적’ 없는 특수고용직 노동자였다.“콜생콜사죠.” 또다른 특수고용직 노동자 배달 라이더 장희석씨도 오토바이에 앉은 채 말했다. 그는 일
공교롭게도 ‘먹고사는 일’ 원고를 넘긴 직후 바로 대통령실 만찬 뉴스를 봤다. 이번 호에 실린 은유 작가의 글 “영희는 ‘부챗님’이다, 먹이는 일에 여한 없는”은 〈시사IN〉이 녹색병원과 함께 시작하는 연재물의 첫 회다. 먹고사는 이야기는 음식 이야기인 동시에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산재 사망 유가족, 급식 노동자, 청소 노동자, 이주노동자 등이 인터뷰 대상이고 그들이 먹는 음식이 기사의 주요 글감이다. 이번 호에 소개된 첫 음식은 ‘김치김밥’이다. 산재 사망 유가족 김영희씨가 평생 동반자였던 고 정순규씨의 마지막 아침 도시락으
협업을 즐기지 않는다. 2인3각 달리기든 조별 과제든 ‘아오, 혼자 하고 말지’ 싶을 때가 많았다. 기사도 혼자 쓰는 게 제일 편했다. 나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공동으로 기획을 꾸려보라고 두 명 이상의 기자에게 취재 지시를 하면서 눈치를 살펴보면 그들의 얼굴은 십중팔구 일그러져 있다.하물며 언론사 간의 협업이라. ‘단독’ 욕심이 다글다글한 기자와 데스크들이 모인 한국 언론계에서 타사와 같은 자료, 같은 취재원을 공유하고 보도 시점을 동시에 맞추자는 약속은 성사될 확률이 매우 희박한 일이다. 〈시사IN〉·뉴스타파·미디어오늘·오마이
자주 ‘읽씹(읽었으나 무시)’하는 문자메시지들이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는데 처음에는 혹해서 메시지 전문을 꼼꼼히 읽기도 했다. ‘개미들의 희망, 초보자의 천국’ ‘손실나면 전액 배상 드립니다’ 같은 문장에는 금세 코웃음을 쳤지만 ‘잔액이 입금되었습니다’ ‘곧 사라지는 쿠폰이 있어요’라고 시작하는 메시지는 본능적으로 열어보게 되었다. ‘경제의 문을 여세요’ ‘주식시장은 나라 경제를 살리는 나라 경제의 조절제입니다’ 등의 기개 넘치는 문구에는 잠시 감탄도 했다. 그러다 어떤 피싱 문자 하나는 아닌 걸 알면서도 재차 삼차 걸려들어
2020년 4월 코로나19 1차 유행을 막 넘긴 때였다. 의료계 인사들이 모인 한 전문가 포럼에 취재 갔다가 낯선 낱말을 하나 들었다. “웬만하면 얘기 안 하고 싶지만… 전시에 준하는 트리아지를 준비는 해야 합니다.” ‘트리아지가 뭐지?’ 검색창에 단어를 입력해보니 다음과 같은 뜻이었다. ‘트리아지(triage):응급 환자 분류. 사상자가 대량으로 발생하는 경우 누구를 먼저 치료할지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 코로나19에 대해 처음으로 실체적 공포를 느낀 순간이었다.그날로부터 딱 열흘 뒤 〈뉴욕타임스〉에서 ‘살릴 가능성이 더 높은 젊
저는 물었습니다. “어릴 때 많이 맞고 자랐지만 아무 문제 없이 잘 컸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음, 진짜 그럴까요? 만약 당신이 맞고 자라지 않았다면요? 지금보다 더 행복하고 더 성공적이며 더 자존감이 높고 인간관계가 더 좋지는 않을까요?”6년 전 ‘아동 인권’ 취재를 위해 스웨덴의 사회법학자 페르닐라 레비네르 스톡홀름 대학 교수(사진)를 만났을 때 나눈 문답입니다. 레비네르 교수를 포함한 세계 여러 전문가들은 체벌의 효과를 실증적으로 연구해왔습니다.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체벌은 반인권적인 점을 차치하
학부모 ‘단톡방’에서 일대 토론이 벌어진 적이 있다. 한 공공 교육기관에서 신청 학생을 모아 한 달에 두어 번 수업을 여는 프로그램이었다. 수업 시간이 3시간을 넘어가니 ‘중간에 배고프다’는 아이들 호소가 이어졌다. 학부모 중 누군가 ‘단체 간식’ 아이디어를 냈다. 학부모 한 사람씩 당번을 정해 샌드위치, 핫도그, 소포장 떡, 컵과일 등 5000원 미만의 간단한 단체 간식을 준비해 돌리고 N분의 1로 비용을 정산하기로 의견이 모아졌다.문제는 선생님 간식이었다. “아이들끼리만 먹고 있기도 그런데… 선생님들께도 똑같은 간식과 커피 정도
영일만 석유 시추 사업 관련 기사에 달린 포털사이트 댓글들을 쭉쭉 내려 보다가, 스마트폰을 터치하던 손가락이 멈췄다. ‘세월호 끌어올리느라 8000억원 썼다~’라는 댓글에서였다. 수많은 ‘좋아요’가 찍혀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기자 연차를 쌓는 일은 포털사이트 댓글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맷집을 키워가는 것과도 일맥상통하지만, 이번에는 가슴이 시큰할 정도로 슬퍼졌다.그래, 그럴 수 있다. 사람의 값과 석유(돈)의 값을 같은 비교선상에 놓고 저울질해보는 사고방식이 ‘틀림’이 아닌 ‘다름’이라고 치자. 대한민국이 산유국이 되고 전 국민이 중
조그마한 조직에서 어쭙잖게 편집국장 직책을 맡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종종 ‘리더의 유혹’에 흔들리게 됩니다.첫째, 조직에 좋은 일이 생기면 자꾸 나서서 구성원들에게 자랑하고 싶습니다. 제가 잘 해서 얻은 성과가 아닌데도요. 기자가 특종거리를 물어오거나, 우리 보도가 어디에서 상을 받거나, 독자들이 기사에 좋은 평가를 보내올 때마다 제가 그 성과를 ‘브리핑’하고 싶은 유혹을 참기가 힘듭니다.반면 실패와 과오는 인정하기가 참 어렵습디다. ‘내가 저렇게 하자고 한 적 없는데?’라는 유치한 억울함이 마음속에서 울컥 올라옵니다. 이른바
〈시사IN〉 이번 호를 최종 마감하는 5월30일 목요일 오후, ‘법원발’ 굵직한 뉴스가 연이어 쏟아졌습니다. 오후 3시경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2심 판결이 속보로 떴습니다. 한 시간쯤 지나서는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하이브를 상대로 낸 의결권 행사 금지(해임안) 가처분 신청의 인용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시사IN〉 제871호 커버스토리 기사에서 다루기도 한 ‘학생인권조례 폐지 움직임’에 제동을 거는 판결도 이날 오후 대법원에서 나왔습니다. 충남도의회가 가결한 충남학생인권조례 폐지안에 대해 충남
이번 주 〈시사IN〉 편집국에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우루과이의 〈갈레리아(Galería)〉라는 주간지에서 일하는 카롤리나 비야몬테 편집장입니다.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 언론 분야 해외 유력인사 초청사업을 통해 5월19일 한국을 찾았습니다. 비야몬테 편집장은 방한 일정 중 〈시사IN〉을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왔습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온, 하지만 저희처럼 ‘주간지’를 만들고 저와 같은 ‘여성 편집(국)장’이기도 한 그를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기쁘게 손님을 맞았습니다.매체 운영 방식, 독자 확대 전략, 각
“아이고 마늘 다 썩겠네.” 봄에 비가 많이 내리면 혼자 중얼거리던 말입니다. 마늘은 제가 나고 자란 고향의 대표 작물입니다. 저희 부모님은 마늘 농사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장마철이 되기 전 폭우가 쏟아지면 꼭 저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웃의 근심이 전이돼 당신들의 근심이 되었던 모양이지요. 마늘에 특별한 이해관계나 감정이 없던 저에게도 이상하게 그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마늘 산지를 떠나 도시민이 된 지 꽤 오래되었을 때까지도 비 오는 봄날이면 뜬금없이 마늘밭 걱정을 입에 담았습니다.이 입버릇을 다시 떠올리게 된 건 김다은
직업병이라는 것을 무시 못합니다.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궁금한 점이 생겨 이것저것 물으면 지인은 타박합니다. “야, 취재 좀 하지 마.” 복잡하게 얽힌 상황이나 지인의 오랜 고민거리를 듣게 되면 일단 묻고 싶은 마음을 참기가 힘듭니다. “왜?” “어디서?” “정확히 언제?” “누가 그랬다고?”…. 나름 조언이랍시고 몇 마디 ‘진단’과 ‘솔루션’을 건넸다가 (그때 저도 모르게) 척을 지게 된 인연도 적지 않습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그거 ‘일침병’이라고, 너와 같은 직업군 사람들에겐 익숙한 소통 방식인지 몰라도 타 직군 사람들은
그날 아침 저는 죽집에서 죽을 사먹고 있었습니다. 입은 꼭 다문 채 작은 야채와 고기 알갱이들을 천천히 씹고, 코로는 심호흡을 하면서 긴장된 마음을 눌렀던 기억이 납니다. ‘이 죽을 다 먹으면 배가 든든하고 속이 편안해져서 쿵쾅대는 심장을 조금 가라앉힐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스물두 살, 원 〈시사저널〉 대학생 인턴 기자 면접을 앞둔 2005년의 어느 겨울날이었습니다. (〈시사저널〉은 저의 선배들이 예전에 근무하던 직장입니다. 경영진의 삼성 기사 무단 삭제로 시작된 ‘시사저널 사태’는 2007년 9월 〈시사IN〉 창간으로
스쳐 지나갔는데 나중에 곰곰이 되짚어보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2015년 말에 했던 한 인터뷰가 그랬습니다. 시민운동가 출신으로 장관급 고위직을 지낸 후 귀촌한 한 인사를 취재할 일이 있었습니다. 과거에 그가 관여한 단체에 분란이 일어났고, 사건을 조사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말을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누군가 갈등을 하고 있다면 누가 100% 옳고, 누가 100% 잘못하는 싸움은 없다. 잘못을 굳이 따지자면 60대 40이거나, 70대 30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사건 조사보고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결과가 100대 0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