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논란’으로 시끄럽다. 인권위 상임위원의 ‘막말 논란’ ‘갑질 논란’ ‘반인권 논란’ 등. 인권위원 11명이 모두 모이는 전원위원회는 자주 파행되고, 피해 구제를 기다리는 인권침해 진정은 자꾸 쌓여간다. 이 소용돌이 속에 인권위원장이 바뀐다. 여느 때보다 신임 인권위원장의 역할이 중요한 시점이다.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65)는 인권위원장 후보추천위원회가 압축한 후보자 5명 중 한 명이었다. 후보자 추천 사흘 뒤인 7월26일 스스로 후보직을 사퇴했다. 헌법학자인 그가 인권위원장으로서 하고 싶은
그동안 알던 한옥의 모습이 아니었다. 외벽에는 알록달록한 장식물이 붙어 있었고 처마 밑은 코발트색 페인트로 칠했다. 전신주와 연결된 굵은 전선이 서까래에 꼬여 있었다. 기둥의 ‘개 소변 금지’ 문구는 화룡점정이었다. 차로 불과 10분 거리에 북촌 한옥마을이 있었다. 그럼에도 최근 〈한옥 적응기〉를 펴낸 정기황 작가(48)는 이 집 앞을 인터뷰 장소로 택했다. “지은 지 80년쯤 된 경기형 민가로, 사람이 오래 살며 잘 관리한 집”이라고 했다. 이런 집도, 이런 집이야말로 ‘전통’에 속한다고 정 작가는 말한다.〈한옥 적응기〉는 정기황
훗날 사람들은 ‘채 상병 사건’을 어떻게 기억할까? 기록이 중요한 이유다. 지난해 7월19일 경북 예천군 내성천에서 벌어진 채 상병 순직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사건의 여파는 그 끝을 가늠하기 힘들 만큼 숨 가쁘게 이어지고 있다.구명조끼 하나 없이 수색 작업에 투입됐던 채 상병의 죽음에 잘못된 윗선의 지시가 있었는지 알아보던 해병대 수사단장이 구속될 뻔했다. 그 배경에 ‘VIP 격노’가 있다는 말이 나왔다.언론 브리핑을 돌연 취소하고 수사 자료를 경찰에 넘기지 말라는 지시를 했다는 국방부 장관이 급작스레 오스트레일리아 대사로 임명됐다
‘난 나야! 내가 하고 싶은 건 내가 정함!’ ‘실수, 실패, 쓸데없음 대환영!’ ‘여긴 공짜 아니고 공공’ ‘우린 모두 다른 생명체, 인정과 존중!’ ‘안전 완전 중요’. 건물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문구들이다. 눈을 돌리고 몸을 틀면 보이는 곳곳에 붙어 있다. ‘라이브러리 티티섬’을 이용할 때 지켜야 할 ‘약속’들이다.티티섬은 공공도서관이다. 청소년을 뜻하는 ‘틴’(Teen, 17~19세), 어린이나 청소년, 어느 한쪽으로 규정하기 애매한 10대 초반을 의미하는 ‘트윈(Teenager+Between, 12~16세)’을 ‘섬’과 합
어려서부터 윤동주 시인을 좋아했다. 시와 수필로 수상한 이력도 있다. 중국에서 태어나 연희전문학교를 다니고 일본으로 유학했던 삶의 궤적을 따라가고 싶었다. “동아시아를 경계 없이 유영하는 모습이 너무 멋졌어요. 그래서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한국으로.” 중국 동포 5세인 박동찬씨(28)는 2015년 집을 떠났다. 바라던 대로 연세대 국문학과에 합격하면서다.고국에서의 삶은 기대와 달랐다. 중국 동포임을 말할 때마다 난처한 질문들이 그를 향했다. ‘중국과 한국이 축구를 하면 어디를 응원할 거야?’ 같은. “한 사람의 정체성은 출신국에도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바가지 머리를 한 캐릭터가 손수건으로 비지땀을 닦아낸다. 넋이 나간 듯 퀭한 두 눈. 줄줄 녹아내리는 몰골. ‘올여름 내 모습을 그린 것은 아닐까?’ 심플한 펜 선으로 이루어진 2차원 웹툰이 흡사 실사판처럼 느껴진다.이솔 작가(필명·40)가 그린 ‘기후위기 진짜 현실 알려주는 만화’ 속 한 장면이다. 지구온난화는 지구의 평균기온을 상승시키는 것 이외에도 여러 가지 교란을 일으킨다. 대표적 현상이 올여름 톡톡히 체감하고 있는 ‘습윤 폭염’이다. 온실가스가 많아져 대기 온도가 높아지면 대기가 끌어안을 수 있는 수
서울 종로구 혜화역 2번 출구를 나와 걸어서 4분 남짓. 대학로 특유의 붉은 건물과 연극 티켓 부스가 늘어선 골목길을 지나 그 소극장으로 간다.삼광빌딩 건물 옆에 가만하게 솟아 있는 낮은 출입구. 연혁이 적힌 작은 동판이 없다면 이곳이 김덕수 사물놀이 ‘소리굿’, 김광석 라이브 1000회 기념 콘서트,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무대에 올리며 한국 공연 문화의 못자리가 된 ‘학전(學田)’이었음을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자신의 손으로 일군 이 공간, ‘배움의 터전’을 닮은 이가 세상을 떠났다.7월21일 김민기 학전 대표가 타계했
2012년 10월 말, 허리케인 샌디가 미국 뉴저지주를 강타했다. 생존 필수품이 된 기름을 사려는 사람들이 뒤엉켰다. 임완수 커뮤니티매핑센터 대표(58·미국 메해리 의과대학 부교수)는 지역 내 고등학생들과 함께 ‘주유소 지도’를 만들었다. 주유소에 전화를 걸어 현재 기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기다리는 사람은 몇 명이며 언제 다시 기름을 들여올 계획인지 등을 확인한 뒤 노트북으로 지도에 표시했다. 뉴욕시는 물론 미국 연방재난관리국, 백악관 등에서도 이 지도를 활용해 시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했다. 북대서양에 상륙한 사상 최대 규모의 허
양석원 국민대학교 생활체육학부 교수(48)는 평생을 무도인으로 살아왔다. 주 종목인 레슬링을 비롯해서, 합기도·주짓수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그랬던 그가 갑작스레 ‘여자 야구’에 꽂히게 된 계기는 우연히 본 JTBC 예능 프로그램 〈최강야구〉였다. 남자 선수들 틈바구니에서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당당히 입단 테스트를 보는 박주아 선수의 모습이 양 교수의 뇌리에 박혔다. 아주 오래전 사회인 야구를 할 때 만났던 여자 사회인 야구선수들의 활기 넘치던 모습도 어렴풋이 떠올랐다. 엘리트 여자 야구팀을 만들어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순간이었다.
2016년 겨울 성균관대학교 문과대학 소속 학과사무실 조교들이 메일 한 통을 받았다. 2017년 새 학기부터 교내 근로장학금 지급액이 삭감될 예정이라는 통보였다. 당시 조교들은 석 달에 한 번 270만원 정도의 장학금을 받고 있었는데, 여기서 한 사람당 7만원 안팎을 깎겠다는 것이었다. 이 결정은 별다른 반발 없이 관철되었다.같은 대학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생으로 구성된 ‘혜화동 인문학 노동자들’이라는 소모임에서 활동하던 구슬아씨(38)는 2017년 여름 이 사건을 알게 됐다. 분명 일을 하고 있음에도 임금이 아닌 ‘장학금’을 받기에
수업이 끝나도 하교하지 않는 학생들이 있다. 돼지를 산책시키기 위해서다. ‘뚱이’는 인천 동구 서흥초등학교에서 사는 돼지다. 2018년 3월28일 당시 6학년 학생들의 요청으로 서흥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아이들은 뚱이의 집을 수리하면서 실과를 배우고, 왕겨와 짚의 효과를 경험하며 과학을 익혔다. 미술 교과는 뚱이 그리기 대회로, 국어 교과는 뚱이 시 쓰기 대회로 연결됐다. 단순히 교과 수업에만 영향을 준 건 아니다. 돼지 수명은 약 20년이다. 뚱이를 돌보기 위해 만들어진 모둠은 동아리 활동으로 이어졌다. 선배들이 졸업해도 후배들이
6년 전 여름이었다. 유기견 보호소 내 비닐하우스 문을 열자 개 수십 마리가 보였다. 기이할 정도로 고요했다. 극심한 무더위로 늘어진 탓이었다. 자원활동을 나간 이여름씨(42)는 그중 털이 유난히 긴 강아지 한 마리에게 눈을 뗄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떠올랐다. “제가 모두를 구할 수 없지만 한 마리 정도는 입양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어요.” 진도 믹스견 ‘모모’가 그해 여름 이씨 집으로 왔다. 모모는 이씨에게 인간의 무릎 아래에도 세상이 있다는 걸 알려줬다. 모모의 눈으로 본 세상이 새로 열렸다.서울살이를 정리하고 2
오후 6시가 되자 최지영 대표의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퇴근 시간을 알리는 소리다. 알람을 설정해두지 않으면 근무가 저녁까지 이어지기 일쑤다. 혼자 일하기 때문에 퇴근 시간도 스스로 감지해야 한다. 6월17일, 평소 같으면 최 대표가 퇴근할 시각에 출판사 대표 다섯 명이 〈시사IN〉 편집국에 모였다. 최지영 에디토리얼 대표(52), 이현화 혜화1117 대표(54), 박희선 가지 대표(53), 박숙희 메멘토 대표(52), 전은정 목수책방 대표(52·사진 왼쪽부터)는 모두 1인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혼자 일하는 데 익숙한 이들이 최
1946년 첫 고교야구대회였던 청룡기가 열린 이후, 고교야구 4대 메이저 대회 경기장을 밟은 여자 선수는 단 두 명이다. 1999년 대통령배 준결승전에 선발투수로 등판한 덕수정보고등학교(현 덕수고) 투수 안향미 선수, 2023년 봉황대기 경기와 지난 5월19일 2024년 황금사자기에 출전한 화성동탄 BC 타자 손가은 선수(18)다.초등학교 5학년 체육 시간에 티볼에 빠져 야구에 입문한 손가은 선수는 야구의 매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선수 아홉 명이 각자 자기 자리에 서서 자기가 맡은 일을 해내는 게, 그래서 같이 작전을 성공시키는
14년 차 현직 기자다. 베이징 특파원으로도 5년간 일했다. 먹는 것을 좋아해 특파원을 하면서 중국 음식 문화에 대한 책을 펴냈다. 특파원을 마치고 지난해 고향인 전북 전주로 돌아와 연합뉴스 새만금 잼버리 취재팀장을 맡았다. 잼버리 사태를 취재하던 중 극심한 허리통증이 찾아왔다. 동네 병원 의사는 악성종양이 의심된다며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림프종 3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마흔을 갓 넘긴 나이, 연합뉴스 전북본부 김진방 기자(41)에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암 진단을 받은 뒤 매일 아침 일기를 썼다. 일기를 쓰면서 자기 안에
강승탁 작가(28·오른쪽)는 회색 정장을 입고 검정 중절모를 쓰고 왔다. 오한숙희 이사장(65)은 웃으며 “승탁씨가 서울에서 정장핏을 보여주기 위해 몸무게를 10㎏ 넘게 줄였다”라고 말했다. 굳어 있던 강 작가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벽면에는 그가 그린 형형색색의 맹수 그림이 다른 두 작가의 작품과 함께 걸려 있었다. 5월21일 서울 광진구 국립정신건강센터 갤러리M에서 열린 발달장애 창작자 3인의 〈멋진 어색함〉 전시 모습이다.여성학자인 오한숙희 비영리 사단법인 ‘누구나’ 이사장은 작가와 방송인으로 활동했다. 삶의 전반기가 “공중
서울 한복판에 놓인 작은 섬이다.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에서 걸어서 10분 남짓. 서쪽으로는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동부이촌동, 동쪽으로는 고급 주택이 모인 한남동을 두고 있지만 이곳 풍경은 다르다. 다닥다닥 붙은 키 작고 낡은 주택과 교회 사이, 가파른 오르막과 개미굴 같은 골목이 퍼져 있다. 오르막과 골목길을 오가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사라지고, 빈 집과 빈 상점이 늘어간다. 오랫동안 지연되어오던 재개발 사업에 최근 속도가 붙으면서 이제 곧 사라지게 될, 서울 보광동(한남 3구역)의 풍경이다.1904년 일본은 용산·평양·의주 세 곳
휠체어를 탄 사람은 미용실에서 어떻게 머리를 감을까? 말을 하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은 원하는 헤어스타일을 어떻게 설명할까? 자극에 예민한 자폐 아동은 큰 소리가 나는 바리캉이 목덜미를 지날 때 어떻게 견딜까? “어? 그러게?” 미용실에서 장애인을 본 기억이 없는 사람은 이렇게 되묻기도 한다. “장애인도 미용실에 가나?”서울시 노원구 장애인 친화 미용실 ‘헤어카페 더 휴(休)’ 상계점은 2022년 9월 문을 열었다. 샴푸 없이 커트만 할 수 있는 장애인 전용 미용실은 있었지만 커트(6900원), 염색(1만5900원), 파마(1만9000
아름다운재단 캠페이너로 활동하는 손자영씨(28)는 대학 시절 짧은 시나리오를 쓰는 교양 수업을 수강한 적이 있다. 다른 학생이 과제로 제출한 시나리오를 읽다가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유독 ‘보육원 출신’ 캐릭터가 자주 발견됐다. 왜 이런 설정을 썼는지 물었다. 돌아오는 답은 단순했다. “그냥,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런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니까.”드라마나 영화 속 캐릭터는 작가의 상상력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구현된다. 그래서 때때로 그 캐릭터들이 현실과 전혀 무관하게 반복되어 그려질 때가 있다. ‘보육원 출신’이라는 캐릭터 설정이
흰 구름이 마을을 둘러싼 산들의 머리에 닿을 듯이 떠 있었다. 지명이 단박에 이해되었다. 전북 진안군 백운(白雲)면. 218.6㎞를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이 백운면 신암리의 데미샘에서 출발한다. ‘호남의 지붕’이라 불리는 진안고원의 일부로 수박·사과·고추 농사를 짓는 주민이 많다.백운면에는 명물이 하나 더 있다. 올해 4월 200호를 맞이한 마을 소식지 〈백운〉이다. 2007년 7월 창간해 달마다 주민들을 찾아간다. 지역의 기성 언론들도 자생력을 잃어가는 시대에 주민들이 직접 만드는 마을 소식지가 17년째 발행을 이어가는 것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