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네요 참새.” 사진을 본 임도훈 보 철거행동 상황실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진 속 새는 누가 봐도 ‘참새’ 한 마리. 날렵하게 곤충을 낚아챈 모습에 잠시 판단력이 흐려졌다. 그렇게 두 번째로 찾은 세종보에서도 흰목물떼새 촬영은 실패했다.지난 6월18일과 25일 세종보 취재(〈시사IN〉 제887호 ‘비교해 보세요, 어디가 진짜 강인지’ 기사 참조)를 위해 세종시의 세종보를 찾았다. 세종보는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며 4대강 ‘재자연화’에 포함되어 완전 개방된 후 해체 전까지 갔던 4대강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군사법원 피고인석에 앉아 있다. 지난해 12월 첫 공판이 시작됐으니, 벌써 9개월째다.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를 지휘하던 박 대령은 돌연 항명과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경찰에 사건 이첩을 보류하라는 지시를 어겼다는 이유다.박정훈 대령 재판에는 취재진, 해병대 예비역, 정치인 등 유독 방청객이 많다. 매번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되는 재판을 취재하느라 꼼짝없이 방청석에 앉아 있으면 허리가 쑤셔온다. ‘기억이 안 난다’는 증인과 답변을 끌어내려는 변호인 사이 돌고 도는 대화를 듣다 자꾸 시
본래 체코 원전 기사(〈시사IN〉 제882호 ‘체코 원전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기사 참조)를 쓸 계획이 없었다. 여러 언론과 단체에서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으리라 여겼다. 그런데 원전 수주를 기정사실화하는 현수막이 걸리는 와중에도 비교적 잠잠했다. 동해 유전 개발 발표 때와는 너무 달랐다. 진보당을 빼면 원내 야당도 조용했다. 대다수 기후 및 환경 NGO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웨스팅하우스와의 지식재산권(로열티) 문제, 한국수출입은행의 지원 여부, 유럽 및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의 흐름 등 관련 쟁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경제
투자 사기를 직접 겪을 일은 없었다. 원체 의심이 많아 재테크 관련 광고를 클릭하지 않았고,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연락처를 외부에 알린 적도 없었다. 올해 초부터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각종 주식과 비트코인, 보험, 부동산 정보가 휴대전화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틀에 한 번꼴로 전화도 온다. 세상이 내 지갑만 노리는 기분이다.이렇게 된 이유를 안다. 지난해 말 SNS 유명인을 참칭한 투자 사기를 취재한 게 계기다. 범죄 수법을 기사화하기 위해 페이스북에서 가짜 광고를 직접 클릭해보았다. ‘개인정보를 외부에 전송하는 데 동의하는지
입던 옷에 문제가 생기면 할머니 재봉틀 아래로 가져가던 시절이 있었다. 할머니는 우리 집의 ‘금손’으로 통했다. 가족들의 베개 커버뿐만 아니라 며느리들의 한복도 직접 만들었다. 교복 치마 유행이 ‘A’ 형태에서 ‘I’로 바뀌면 할머니를 졸라가며 수선 비용을 아꼈다. 구멍 난 옷이나 양말을 버리면 핀잔을 듣기도 했다. 어릴 적 습관 때문인지 지금도 구멍 난 양말을 한데 모아두는 버릇이 있다.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에 있는 ‘수리상점 곰손(이하 곰손)’을 취재하며 할머니 생각이 났다. 처음 그곳을 방문한 날, 영등포구 시니어클럽의 곽성규
오랜만에 취재원을 만나면 근황을 나눌 겸 종종 받는 질문이 있다. “기자님, 요즘에는 뭐 취재하세요?” 최근에 그 질문을 받았을 때 손가락을 하나씩 꼽아보았다. “보자, 이번 주에는 교제살인 취재하고요. 지난주에는 훈련병 사망사고 취재했고, 그 전에는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 그 전에는 청소년 도박….”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 둘을 키우는 상대방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체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애를 낳으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애들 재우고 폰을 보다가 그런 뉴스들이 나오면 ‘저 집 부모는 어쩌나’ 싶어서 숨이 콱 막혀요
최근 다문화를 주제로 고민하는 이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아프간 특별기여자의 울산 정착기를 다룬 〈미래를 먼저 경험했습니다〉를 펴내면서다. 절박한 현장들이 많았다. 이주 배경 학생이 30%가 넘는 초등학교에 재직 중인 한 교사는 번역 앱 파파고로 러시아어를 돌려가며 수업한다. 경북에서 채소 농장을 운영하는 이는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면서 ‘한 번도 공존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다’고 했다. 그만큼 분리되어 있었다. 20년 차 한국어 교원의 말도 기억에 남는다. 이미 수년 전부터 지역에선 외국인을 학생·소비자·노동자로 불러
기자회견 1회, 페이스북 게시물 5회. 김장겸 국민의힘 의원이 ‘언론 장악 카르텔 공동취재단(시사IN·뉴스타파·미디어오늘·오마이뉴스·한겨레)’의 보도 후 닷새 동안 보인 반응이다. 김 의원은 공동취재단의 보도는 음모론으로 가득한 소설 수준에 명백한 허위사실이라며, 정정보도와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취재와 보도를 하다 보면 반박과 비판, 지적 등이 따라올 때가 있다. 보도의 ‘주인공’이 되는 인물이 취재 결과물에 불편해하거나 화를 내고,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런데 김장겸 의원의 반응은 당황스러웠다. 그는 취재 결과물의 반대편에
정치인의 글보다 말을 유심히 보는 요즘이다. 정치 라이브 콘텐츠(〈시사IN〉 유튜브 ‘김은지의 뉴스IN’)를 다루면서 생긴 습관이다. 말을 유려하게 잘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전하고자 하는 요지(언론계 은어로 ‘야마’)가 명확하든, 새로운 정보가 있든, 재미가 있든…. ‘킥’이 하나쯤 있는 이라면 눈길이 간다. 그중 최고봉은 ‘사람’이 담긴 말을 하는 정치인이라 여긴다.물론 쉽지 않다. 여의도는 말이라는 무기를 들고 홀연히 나서는 전장이라, ‘말이 칼이 되는’ 순간을 자주 목격한다. 때로는 그러한 말로 무장한 이들이 검투사가 되어
수영을 시작했다. 4개월 차 초보다. 정말 피하고 싶었던 운동이다. 어릴 적 큰 파도에 휩쓸린 경험이 있어서 물 공포증이 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물놀이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 올해 초 허리에 통증이 생겨 찾아간 정형외과 의사가 수영을 권했고, 이를 기회 삼아 미루고 미루던 수영 강습을 등록했다.왕초보반에서 물속에서 걷는 법, 호흡하는 법부터 배웠다. ‘음’ 소리를 내며 들어간 물속은 새로운 차원의 세상이었다. 내뱉는 숨에 올라오는 물방울이 보글보글 소리를 만들어내는구나. 물속까지 뻗어 내리는 천장 형광등 빛은 움직이는 물길
얼마 전 지인과 대화를 하다 “정말? 그 정도라고?”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지인은 지난해 서울 강남의 한 지역으로 이사를 했다. 아이가 다닐 유치원을 구하고 있는데 그 동네에서는 영어 유치원이 기본이라 오히려 일반 유치원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이제는 유품이 된 A씨의 메모를 읽다가 그날의 대화가 떠올랐다. 전남 순천의 특성화고를 졸업한 A씨는, 현장실습을 나갔던 전북 전주시의 제지 공장에 입사한 지 6개월 남짓 된 신입 직원이었다. 일요일이던 6월16일, 7시45분 아침 조회를 마친 그는 홀로 배관 점검 업무에 나섰다. 오전 9
주택도시기금은 정부에게 ‘요술방망이’다. 주택도시기금법 1조에 적시된 기금의 목표는 ‘주거복지 증진과 도시재생 활성화’다. 그러나 법에 명시된 역할 외에 하는 일이 많다. 특히 대통령이 ‘생색내기’ 좋은 정책에 이 기금이 동원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신생아 특례대출 대상 확대다. 6월19일 정부는 신생아 특례대출 소득요건을 기존 부부 합산 연 1억3000만원에서 연 2억5000만원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정부가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며 대대적인 저출산 대응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터였다. 신생아 특례대출은 시장금리보다
요즘 유진이(가명)는 정신이 쏙 나가 있다. 유진이는 “평소랑 똑같은데 왜 그래?” 한다. 부쩍 ‘다이소’를 자주 들락거린다.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을 사달라고 조른다. 휴대전화를 계속 의식하고, 뭘 하다가도 몰래 화면을 켠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에게 유튜브 이야기를 꺼냈다. 정확히는, “나도 친구들처럼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싶어”였다.초등학교 3학년인 유진이의 친한 친구들은 거의 ‘유튜브 크리에이터’이다. 주로 다이소에서 자잘한 물건들을 사서 언박싱하는 영상을 찍어 올린다. 영상에 친구들 얼굴이 나오진 않지만 목소리나 손을 보면
어릴 적 ‘삼청교육대’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불량배, 깡패, 불순분자들을 잡아다가 순화해 다시 사회의 일원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국가가 육체와 정신을 개조해주는’ 특별교육시설이라고 배웠다. 학교에서 말 안 듣고 떠들거나 성적이 낮은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저 삼청교육대 보낼 놈들”이라며 겁박하곤 했다.고향 마을에는 삼청교육대에 다녀온 사람도 있었다. 그의 아내는 아이를 두고 집을 나갔고, 어린 아이는 부랑자처럼 동네를 떠돌아다니며 구걸을 했다. 그의 노모는 자식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쉬쉬하면서도 늘 움츠려 있었고 생계를 잇기 위해
처음으로 전세사기 피해 문제를 취재하게 됐다. 5월1일 대구 다가구주택 전세사기 피해자 A씨(38)가 숨진 채 발견됐다. 다가구주택 ‘후순위 임차인’인 데다 ‘소액 임차인’에 해당하지 않아, ‘최우선 변제금’도 받을 수 없었다. 전세금 8400만원 중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이 없다는 의미였다. 그는 유서에 “빚으로만 살아갈 자신이 없다”라고 적었다.전세사기 피해는 유형이 다양하고 복잡했다. 용어도 낯설었다. 〈시사IN〉에서 오래 전세사기를 취재해온 김동인 기자는 본격 취재 전 미리 공부해둬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그걸로는 부족하다고
연금개혁 기사를 처음 쓴 건 2018년이다. 제4차 재정계산 결과가 발표된 뒤 국민연금 기사에 달린 ‘분노의 댓글’들을 분석했다. 그 댓글 중 하나는 이랬다. “다단계 사기, 폭탄 돌리기다. 먼저 가입한 사람만 이익을 보고, 젊은 세대는 연금을 못 받거나 쥐꼬리만큼 받는 것 아닌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두 쪽으로 갈렸다. 그때 처음 알았다. 연금개혁에 대한 두 입장을.한쪽은 ‘현세대는 보험료를 적게 내고 연금을 많이 받는데, 후세대는 보험료를 많이 내고 연금을 적게 받을 것이다’라는 주장 자체가 ‘프레임’이라고 했다. 이들은 기
윤석열 대통령이 5월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저출생대응기획부 신설을, 5월13일에는 저출생수석실 신설을 지시했다. 저출생 문제를 ‘국가비상사태’로 인식한 결과라고 했다. 정부의 때늦은 호들갑에 일부 지자체도 발맞췄다. 경상북도는 지난 2월 ‘저출생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5월13일 ‘필승 실행계획’을 발표했다.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진하기 위해 결혼정보회사 역할을 도청이 맡고, ‘연애시 행복읍’으로 명명한 솔로 마을도 운영할 예정이라고 한다.합계출산율 0.7명으로는 경고가 부족했구나 싶다. 전쟁의 언어로 생명을 사고하는 천박함이야
김민기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건 ‘봉우리’ 때문이었다. 어느 심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는데 그동안 듣던 대중음악과 완전히 달랐다. 굉장히 낮은 음성의 내레이션이 이어졌고 죽 이런 식인가, 싶을 때 멜로디가 흘러나왔는데 마음을 흔드는 뭔가가 있었다. 하던 일을 오래 멈추게 했다.최근 방영된 〈SBS 스페셜〉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뜨겁다. 익숙한 이름이지만 김민기에 대해 새로 알게 된 것이 많다는 후기가 눈에 띄었다. 나 역시 극단 학전과 뮤지컬 〈지하철의 1호선〉 〈아침이슬〉의 김민기 정도
저는 올해 한국 경제의 향방이 국내보다 해외 요인에 달렸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정책이 어느 쪽으로 갈지 주목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고금리는 차입비용을 세계적으로 껑충 높여 놓았습니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등 우리 경제의 리스크 요인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순간이 닥칠 수 있습니다.그러던 4월25일 깜짝 놀랄 만한 데이터가 나왔습니다. 미국의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연율 기준)이 시장 전망치(2.4%)보다 한참 낮은 1.6%로 나왔어요. 미국 경
지금은 고인이 되신 저의 할머니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분이셨습니다. 할머니는 1930년대생이었으니, 그 시절 태어난 여성 대부분이 비슷한 처지였을 것입니다. 정규교육은 고사하고,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는 글을 가르쳐주는 멋진 어른도 없었나 봅니다. 할머니는 아주 오랜 시간을 ‘까막눈’으로 살아야 했습니다.정확히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할머니에게도 늦게나마 글을 배울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노인대학’에서 한글을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안타깝게도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한글을 유창하게 읽고 쓰진 못하셨습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