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마침내 개원식을 열었다. 제22대 국회의원 300명이 임기를 시작한 지 95일 만이다. 9월2일 국회 개원식에 윤석열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 없이 진행된, 가장 늦은 국회 개원식’이 됐다. 이날 대통령 불참으로 국회의장석 앞 단상은 비었다. 그 풍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본회의장 2층 참관석은 개원식에 초청을 받은 특별 손님 150명이 가득 메웠다.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는 말로 개원사를 시작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정치가 할 일도, 대한민국이 나아가는 힘도 국민의 삶에서 나온다”
“어른들은 저희에게 항상 어린이답게 행동하라고 하지만 정작 중요한 책임에 대해서는 저희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기후위기는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당장 모든 사람이 겪고 있는 현실입니다. 앞으로 저와 같은 어린이들이 헌법소원에 나서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번 판결이 더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8월29일 헌법재판소는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담지 않은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31년부터 2049년까지 국가가 감축할 온실가스 배출량의 목표치를 설정하지 않아 국민의 기
연신 땀을 닦던 사람들이 새카맣게 탄 공장 앞에 멈춰 섰다. 아리셀 참사 발생 55일째인 8월17일, 폭염에도 불구하고 전국 50개 도시에서 ‘8·17 죽음과 차별을 멈추는 아리셀 희망버스’에 참가한 이들이 피해 가족들을 응원하기 위해 참사 현장으로 모였다. 산재 피해 유가족, 참사 유가족, 대학생, 종교계·문화예술계·노동계 단체 회원 등이 탄 대형 버스 60대와 개인 차량 40대가 오후 1시께 공장 앞에 속속 도착했다.6월24일 노동자 23명이 죽고 8명이 다친 경기도 화성 아리셀 리튬전지 공장 2층 건물은 형체만 겨우 남아 있었
제79주년 광복절인 8월15일, 서울에서는 광복절을 기념하는 행사가 동시에 두 군데에서 진행됐다. 정부가 주관하는 행사와, 광복회와 독립운동단체연합이 별도로 개최한 행사이다. 정부와 독립운동단체가 따로 광복절 기념식을 진행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친일 뉴라이트 인사’로 논란이 된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 임명에 반대하며 정부 주관 행사에 불참을 선언했던 광복회는 56개 단체로 구성된 독립운동단체연합과 함께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광복절 기념식을 열었다. 독립운동가 후손을 비롯해 광복회원 및 독립운동단체 회원 등 참석자 5
약 235조원. 하루 만에 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 사라진 돈이다.8월5일 코스피 지수는 이날 직전 거래일 대비 234.64포인트(8.77%) 하락한 2441.55로 거래를 마쳤고, 코스닥 지수도 88.05포인트(11.30%) 내린 691.28에 장을 마감했다. 하락률로는 2008년 10월24일(-10.57%) 이후 16년 만에 최대다. 이날 오후 2시14분께 지수가 8% 넘게 떨어지며 유가증권시장에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돼 거래가 20분간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이날 코스피의 시가총액은 1997조 7450억원으로 하루 만에 약 192
“눈 감아야 보이는 조국의 하늘과 어머니의 미소, 그 환한 빛을 끝내 움켜쥐지 못한 굳은살 배인(박인) 검은 두 손에 잊지 않고 진실을 밝히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2017년 8월12일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 추진위원회’는 서울 용산역 광장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우며 머릿돌에 이렇게 새겨 넣었다. 일제강점기 용산역은 일본, 사할린, 남양군도, 쿠릴열도 등 강제징용을 가는 조선인들이 마지막으로 밟은 고국 땅이었다. 그 역사의 장소에 세워진 ‘강제징용 노동자상’은 ‘평화의 소녀상’을 만든 조각가 김서경·김운성씨가 제작했다. 오른
2022년 7월22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거제옥포조선소 1도크에 있던 0.3평 공간의 철제 구조물이 해체됐다. 하청·비정규직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그 안에 스스로를 가뒀던 조선소 하청 노동자 유최안씨가 병원으로 이송된 후였다. 그가 31일 동안 살았던 철제 구조물에는 손으로 쓴 종이가 붙어 있었다.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우리는 살고 싶습니다.’2년이 지난 지금 ‘조선소 유최안들’의 삶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파업 종료 2년을 맞은 7월22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집회를 연 금속노조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
서울에 첫 호우 특보가 내려진 7월17일 오전, 서울 중구 청계광장 조형물(소라탑) 아래에 마련된 ‘채 상병 순직 1주기 추모 시민 분향소’가 시민들을 맞이했다. 지난해 7월19일 경북 예천 내성천에서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 급류에 휩쓸려 숨진 채 상병의 사진이 분향소 중앙에 놓였다.채 상병이 순직한 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사망 원인과 책임자를 규명하는 일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제21대와 제22대 국회에서 통과된 두 번의 ‘채 상병 특검법’은 대통령에 의해 모두 거부되었고(재의요구권 행사), 채 상병 순직사건에 대한 첫 수사기관의
본격적인 장마를 알리는 비가 집회 시작을 앞두고 장대비로 변했다. 각양각색의 우산을 쓰고 모여 있던 조합원들은 검은색 우비로 갈아입고 한자리에 모였다. 우비 위로 묶은 총파업 머리띠에 새겨진 글씨는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창사 55년 만의 첫 총파업이 7월8일 오전 경기 화성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앞에서 시작되었다.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조합원 수 3만657명 규모로, 직원 12만5000여 명 이 다니는 삼성전자에서 최대 노조다. ‘무노조 경영‘으로 유명한 삼성전자에서 노동자들이 조합을 결성하고 총파업까지 나서게 된 가장
7월4일 ‘채 상병 특검법(순직 해병 수사방해 및 사건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다. 제 22대 국회에서 통과된 1호 법안이다. 지난 5월21일, 제 21대 국회에서 통과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7월3일 본회의에서 국민의힘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법안을 상정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특검법으로 그동안 지연된 진상규명이 신속히 이뤄지고, 국민께서 가졌던 의혹이 해소될 수 있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상정 직후
그날도 ㄱ씨는 여느 때와 같이 점심 장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고요한 산업단지에서 그는 실내에 켜놓은 TV 소리를 들으며 식재료를 다듬고 있었다. 출퇴근 시간과 점심시간이 아닌 때에는 모두들 공장 안에 있어서 ‘사람 그림자 하나 볼 수 없는’ 동네다. 전봇대에 덕지덕지 붙은 인력업체 스티커만 바람에 파닥거릴 뿐이다. 그런 ‘보통’의 날, 어느 시각, 뒷문을 열어놓고 일하던 ㄱ씨는 엄청난 굉음에 비틀거렸다. 이내 속이 울렁거릴 만큼 독한 화학물 냄새를 맡았다.6월24일 오전 경기 화성시 서신면 전곡산업단지 내 아리셀 공장 3동에서 불이
뙤약볕이 작열하던 6월18일 오후.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집단 휴진을 강행하며 서울 여의도 환승센터 앞에서 ‘의료농단 저지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를 개최했다. 개원의를 비롯해 일부 의대 교수와 의대 증원에 반발하며 사직한 전공의, 의대생과 학부모 등 1만2000여 명(경찰 추산)이 집회에 참가했다.의협은 의대 정원 증원안 재논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쟁점 사안 수정·보완, 전공의·의대생 관련 모든 행정명령과 처분 즉각 소급 취소 등 3가지 요구사항을 내걸었다. 정부가 이 요구사항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6월27일부터 무기한 휴진에
오두산 통일전망대가 위치한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지점이다. 한강의 하류인 이곳은 서해와 인접해 있어서 썰물 때면 강바닥이 드러나곤 한다. 그곳에서 조금만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북한의 황해북도 개풍군이다. 전망대 망원경에 눈을 대면 강의 아지랑이 너머로 북한 농부들이 보이기도 한다.적막하던 이곳에 요즘 들어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시작은 지난 5월10일 탈북민 단체가 대북 전단을 날려보낸 일이었다. 5월28일부터 북한은 남한을 향해 오물 풍선을 내려보냈다. 6월4일 우리 정부는 ‘9·19 군사합의’
‘제22대 국회 개원.’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전면 한가운데에 경축 현수막이 걸렸다. 민의의 전당 개원식에 경축 팡파르를 울려야 마땅하지만 시절이 녹록지 않다.대통령은 임기 2년여 동안 법안 14건에 거부권을 남발했다. 국민은 지난 4·11 총선에서 범야권에 192석을 몰아주었다. 여당은 참패했지만 지지율 21%인 대통령은 여당의 연찬회에 참석해 어퍼컷을 날리고 술잔을 돌렸다. 범야권인지 혹은 국민인지, 누구를 향한 어퍼컷인지는 몰라도 국회가 대응할 방법은 좀체 눈에 띄지 않는다.대통령이 거부권을 거듭 행사할수록 국회 앞 천막에 기
“운율에 맞춰 ‘살살 쓰고 바짝 말려 고이 접어 오래오래’ 어때요?” 5월23일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에 위치한 ‘수리상점 곰손’에서 고장 난 우산을 수리하는 ‘호우호우’ 팀이 회의를 이어갔다. 의뢰인이 맡기거나 기증받은 우산을 고쳐 재사용하는 과정에서 ‘업사이클’ 표식을 부착하자는 아이디어 등 여러 의견이 오갔다. “돈도 없는데 이렇게 아이디어만 많으면 어떡하죠?” 알맹상점 운영자이기도 한 금자씨(활동명)의 말에 모두 웃음을 지었다.‘수리상점 곰손’(이하 곰손)은 ‘기후위기를 건너는 일상생활 기술을 나누는 곳’을 표방하며 올해 2월
“밖으로 좀 나와보셔요~.” 5월21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의 서신신일아파트 101동 경비원 김한섭씨(66)가 자신의 초소 앞에서 전화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성욱씨(66)가 101동에서 나왔다. 강씨는 101동 대표이자 입주자대표회장이다. 1958년생 동갑내기인 김씨와 강씨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30년 된 아파트 단지를 거닐었다.짧은 산책을 마친 후 경비초소에 돌아온 김씨는 출입구에 설치된 암막 커튼을 쳤다. 질 좋은 수면과 사생활 보호를 위해 직접 설치한 것이다. 서신신일아파트에는 경비초소가 총 6개 있다. 경비원이
“금남로 인근에 있던 저를 찾으러 오토바이를 타고 온 아버지의 모습이 기억나요. 계엄군이 모든 도로를 차단해서 밖으로 나가기 힘든 상황이었어요.” 1980년 당시 광주여자고등학교 1학년이던 박귀임씨(61)가 5월의 그날을 떠올리며 말했다.5월12일, 5·18민주화운동 44주년을 앞두고 광주에서 ‘오월길 걷고, 어반스케치하다’ 행사가 열렸다. 동구 일대 5·18 사적지를 둘러본 후 그림을 그리는 이 행사에는 박씨처럼 그날의 기억을 가진 광주 시민을 포함해 전국에서 40여 명이 참가했다.오전 도심 투어에서 방문하는 사적지마다 동그란 모
현장에는 유튜버가 있다. 2022년 대선과 2024년 총선 기간 유세장에는 카메라를 든 기자보다 스마트폰을 든 유튜버가 더 많았다. 현장에 가지 못한 시민들은 많은 경우 뉴스를 보는 대신 유튜브를 켰다. 2년 차 정치 유튜버 김은희씨(가명)도 그랬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정치 유튜브를 즐겨 보던 그는 지난해 3월부터 23년 경력의 디자이너 일을 잠시 내려놓고 여러 현장에 나가 생중계를 시작했다.김씨의 눈에 비친 정치 유튜버들은 언론이 다루지 않는 사안을 자세히 알리고 있었다. “방송사들은 보도를 안 하거나 일부만 내보내죠. 제가 유
“다음번엔 〈쿵푸팬더〉를 보자.” 이성희씨(64)가 영화관을 나서며 말했다. 영화 〈범죄도시 4〉가 너무 잔인해서 눈을 뜨고 보지 못했다던 김금순 활동지원사는 “언니는 그래도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잘 보더구만”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성희씨와 금순씨는 ‘검정색 재킷을 입은 덩치 큰 남자 배우의 이름이 마동석‘이라거나 ’길가에 핀 분홍색 꽃은 진달래가 아니라 철쭉’이라는 소소한 수다를 떨며, 집으로 가는 장애인 콜택시를 기다렸다.집에 도착하자, 김금순 활동지원사는 앞치마를 두르고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집에서 직접 만든 반찬들을 냉장
희생된 아이들 250명의 이름을 다 부르는 데 10분40초가 걸렸다. 10년 전 봄날에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 단원고 2학년 아이들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엄마·아빠 어깨에 앉은 노란 종이 나비가 답하듯 움직였다.열 번째 봄이다. 세상에 없는 아이를 그리워하며 10년을 버틴 부모의 머리카락과 얼굴에도 세월이 내려앉았다. 고등학생 시절에 멈춰버린 친구를 기억하는 세월호 생존자들은 이제 20대 후반 청년이 됐다. ‘기억, 약속, 책임’을 주제로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10주기 기억식에는 약 2000명이 모였다. 같은 날 오전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