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힙합 신에는 미국이나 유럽 힙합 신에선 접하기 어려운 이슈가 몇 개 있다. 랩 레슨 논쟁은 그중 하나다. 일반 대중이라면 랩을 가르치고 배우는 행위가 왜 문제일까 싶겠지만, 힙합이란 특수한 문화 안으로 들어오면 상황이 좀 달라진다. 다른 분야와 달리 랩은 스스로 영감을 얻어 습득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이는 랩이 생겨난 독특한 과정 때문일 것이다. 랩은 1970년대 파티장에서 탄생했다. ‘힙합의 아버지’ 디제이 쿨 허크(DJ Kool Herc)의 옆에서 호스트를 봤던 ‘최초의 래퍼’ 코크 라 록(Coke La Roc
어린 시절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는 단연 〈드래곤볼〉이었다. 〈드래곤볼〉의 주인공인 손오공은 매번 더 강력한 적을 마주치는데, 그런 적을 만날 때마다 진심으로 기뻐하며 정면으로 대결하곤 한다.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고 다쳐도 끝내 정정당당하게 싸워 상대를 어떻게든 쓰러뜨리고야 만다. 어린 나는 손오공의 지칠 줄 모르는 성장과 압도적인 힘을 동경했다.〈드래곤볼〉 같은 만화를 흔히 왕도물이라고 부른다. 왕도물의 주인공에게는 대체로 세계 최강자와 같은 목표가 정해져 있고, 그 목표를 위해 끊임없이 분투하고 성장하며 길을 곧게 따라간다.
6년 만에 만난 친구와 타이(태국) 음식점에서 식사를 했다. 쏨땀, 춘권, 팟타이, 바질 볶음밥. 가벼운 음식을 먹고 싶다는 나를 위해 친구가 예약해준 타이 레스토랑의 음식들은 모두 훌륭했다. 후식으로 나온 진저비어를 반쯤 비웠을 때, 나는 친구에게 근처 카페로 이동하자고 말했다. 그러자 친구가 갑자기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너 오늘은 약속 없나 봐? 예전엔 나랑 만나다가 저녁에 데이트하러 가고 그랬는데.” ‘내가 언제!’라는 반사적인 대꾸가 입 밖으로 나오려던 찰나, 순식간에 과거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
일본에서의 생활담을 다룬 웹툰 〈아오링 도쿄〉는 오랫동안 ‘애정하는’ 만화다. 한 화 한 화 아끼고 아껴 음미하며 볼 정도로 좋아한다. 〈아오링 도쿄〉의 주인공은 한국인 ‘아오링(링짱)’이다. 그는 어느 날 불현듯 일본에 건너갔다가 그곳에서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기른다. 일본에서 만난 한국인 남편과 좌충우돌하며 식당을 운영했고, 식당 문을 닫은 후에도 그곳에 거주하며 소소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식당을 운영하며 그가 마주했던 여러 손님과 지인에 대한 이야기 중 유독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 주인공은 ‘아키코’로, 링짱의 술집을
생활툰이 돌아왔다. 인기작 〈마음의 소리〉가 다시 연재 중이고, 10년 전 뜨거운 호응을 불러일으킨 〈선천적 얼간이들〉은 최근 시즌 2 연재를 마쳤다. ‘고전 생활툰’이 귀환한 데 이어 저마다 참신한 소재를 다루는 신작 생활툰도 늘어났다. 청소년 학생들과 학원 선생님의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그린 〈K학원 생존기〉,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들려주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어린이집 생활툰 〈어린이집 다니는 구나〉,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자유분방하게 오가는 19금 로맨스 생활툰 〈부르다가 내가 죽을 여자 뮤지션〉 등. 아주 오랜만에 목도하는 생활
“제목은 좀 그렇지만, 그런 작품 아니에요.”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홍보하는 사람들은 으레 이런 말을 한다.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웹툰들의 제목이 웹소설 문법에 맞게 문장형 등으로 지어진 제목이 많다 보니, 독자들도 왠지 낯선지 이런 말을 꼭 덧붙이곤 하는 것이다. 예컨대 〈언니, 이번 생엔 내가 왕비야〉라거나 〈무림세가 천대받는 손녀딸이 되었다〉 등. 글자로만 읽는 건 아무 무리가 없지만, 입으로 작품 제목을 말하는 순간엔 나도 때때로 쑥스러워지곤 한다.이런 방식으로 제목이 지어지는 데에는 웹소설계 나름의 이유가 있다. 장르의
통쾌한 복수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일명 ‘사이다’ 서사가 오랫동안 인기를 누리는 중이다. 사이다 서사는 최근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여겨지지만, 사실 최소 1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웹툰 〈외모지상주의〉는 외모로 인해 놀림받던 형석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어느 날 갑자기 형석이 완벽한 몸과 수려한 외모를 지니게 됨으로써 사는 세계가 달라진다는 설정을 보여준다. 이 작품이 폭발적 인기를 끈 게 2014년이다. 뒤이어 2018년 연재를 시작한 웹툰 〈여신강림〉도 메이크업을 통해 주인공 ‘주경’의 외모가 아름답게 변하게 된다
얼마 전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틴틴팅클〉의 사인회에 운 좋게 당첨되어 아이와 함께 다녀왔다. 초등학생인 아이는 〈틴틴팅클〉의 열렬한 애독자다. 단행본 〈틴틴팅클〉이 꽤 두꺼운 데다 몇 권이나 되는데도 그걸 여러 번 읽고 또 읽더니 이제는 〈틴틴팅클〉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의 이름과 성격을 줄줄 외울 지경이다. 원래는 내가 〈틴틴팅클〉을 좋아해 단행본을 구매했는데, 내가 사둔 책을 보다가 아이 역시 작품에 빠져들었다. 사인회에 줄 선 사람 중에는 우리 말고도 양육자의 손을 잡고 온 초등학생이 여럿 있었다. 20~30대 여성
“증오와 분노, 이런 것들은 마치 전염병과 같아. 매번 방향과 목적을 바꿔가며 여기저기 생채기를 내지.” 웹툰 〈나쁜 마법사의 꿈〉에 등장하는 대사다(77화 중). 이 만화는 마법사나 마법청, 마법학교와 악마가 존재하는 세계관을 갖고 있다. 마법으로 뒤덮여 있는 세계이지만, 정작 주인공은 마력 하나 없는 일반인 ‘대아’다. 처음엔 전산 오류로 마법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으나 이후 대악마와 계약하며 마법사들에게 필적할 힘을 갖게 된다.대아의 목표는 단 하나, 이 학교에서 사라진 친누나 ‘지금’을 찾아내는 것이다. ‘지금’은 사상 최악의
‘온스테이지’가 끝났다. 2010년 11월 네이버 문화재단이 인디 뮤지션 창작 지원사업으로 시작한 지 꼬박 13년 만의 일이다. 온스테이지의 마지막은 2인조 밴드 페퍼톤스가 장식했다. 313번째 출연자로 등장한 이들은 ‘뉴 히피 제너레이션(New Hippie Generation)’ ‘21세기의 어떤 날’ ‘행운을 빌어요’를 불렀다. 페퍼톤스가 20년 넘게 활동하며 쌓은 레퍼토리 가운데 가장 희망차면서도 애틋한 노래들이었다. 마지막 곡 ‘행운을 빌어요’의 가사를 곱씹으며 몇 번이나 마음이 울렁였다. ‘빛나기 시작한 별/ 세차게 부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무렵, 회의 중에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 엄마 핸드폰 맞나요? 지금 학교 운동장에서 ○○가 혼자 헤매고 있어서요.” 정규 수업을 마치고 돌봄교실에 가야 하는 날이었는데, 아이가 가야 할 곳을 찾지 못하다가 급기야 혼자 집에 가겠다고 나선 모양이었다. 전화를 걸어준 사람은 생면부지의 학부모였다. 내가 상황을 설명하자 그는 흔쾌히 아이를 돌봄교실까지 데려다주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고 감사한 일이었다.지금은 집에서 ‘주부’를 맡고 있는 내가 아이의 하굣길에 동행한다. 오후 한
초대형 쇼핑몰 ‘서울타워’에 좀비가 나타났다. 하필 쇼핑몰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주말이었던 터라, 인명 피해가 어마어마하게 발생했다. 좀비의 등장으로 서울타워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되었지만, 곧바로 진압되어 서울타워 바깥으로 좀비가 나가는 일은 없었다. 다만 서울타워 안에 좀비가 너무 많아진 탓에 정부는 서울타워를 ‘좀비지구’로 지정하고 접근을 봉쇄한다.웹툰 〈위아더좀비〉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보아온 다른 좀비물과 다소 결이 다르다. 물론 여기에서도 좀비는 사람을 보면 물어뜯으려 달려들고, 떼를 지어다니며, 혐오
일상의 순간을 포착하여 만화 언어로 옮긴 작품을 일상툰 또는 생활툰이라 부른다. 웹툰 태동기를 함께 이끈 웹툰 〈낢이 사는 이야기〉나 〈마음의 소리〉도 이 장르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생활툰이라 하면 유머가 가미된 귀여운 만화 정도를 떠올리곤 한다. 물론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생활툰이 언제나 웃기고 가벼운 건 아니다. 간혹 생활툰 작품을 펼치면 재미있고 소소한 장면들 너머로 묵직한 현실의 무게감이 전달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반지하 셋방에서 사는 자매들의 일상을 다룬 웹툰 〈반지하 셋방〉에는 낯선 외부인이 한밤중에 자매의 집
쥘 베른의 소설 〈15소년 표류기〉(1888)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소년 열다섯 명이 무인도에 고립되어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다.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1554)에서는 고립된 환경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사악한 본성에 주목했다. ‘고립-생존’ 서사를 더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살아 있는 사람을 습격하는 낯선 존재를 등장시키기도 한다. 드라마로 제작되어 큰 인기를 끈 웹툰 〈스위트 홈〉 〈지금 우리 학교는〉은 고립된 곳에 괴물과 좀비를 등장시켜 생존의 조건을 더 극한까지 끌어올렸다.네이버 웹툰 〈어느날 갑자기 서울은〉은 제
“가자.” 백발의 베테랑 형사가 뱉은 한마디에 팀원 전체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들을 태운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출동하는데, 원경으로 보이는 장소가 모두 유적지다. 천년 고도의 고요한 풍경 안에서 이질적인 소음을 만드는 이들은 바로 경북 경주경찰서 형사3팀 형사들이다. 파출소의 연락을 받고 그들이 출동한 곳엔 남성의 시신 한 구가 있다. “68세 남성. 미혼. 최근 함께 살던 어머니가 사망. 범죄나 타살 혐의 없음.” 함께 출동한 과학수사팀의 현장 감식이 끝나고 이웃을 탐문하는 과정에서 고인의 삶과 죽음이 허무하게 요약된다.형사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2021)의 세계적 성공 이후 불어닥친 K드라마 열풍의 중심에 K학원물이 급부상하고 있다. 〈오징어 게임〉의 뒤를 이어 넷플릭스 글로벌 시청 순위 1위를 기록한 〈지금 우리 학교는〉을 선두로, 디즈니 플러스 〈3인칭 복수〉, 웨이브 오리지널 〈약한 영웅 Class 1〉 등이 차례로 주목을 받았다. 3월31일 공개된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방과 후 전쟁활동〉은 유서 깊은 국제 드라마 페스티벌 ‘시리즈 마니아’에서 큰 호평을 얻기도 했다.최근의 K학원물은 KBS ‘〈학교〉 시리즈’로 대표되는 리얼리즘 기반의 정
웹소설 작품들은 대체로 제목이 긴 편이다. 제목 안에 작품의 핵심 설정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웹소설 〈SSS급 용사님이 힘을 숨김〉은 제목 그대로 전설적인 능력을 갖춘 용사가 자신의 힘을 숨기고 현대사회에 다시 돌아와 평화롭게 살기를 도모하는 설정이다. 주인공은 능력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살고 싶어 하나 주변에서 그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이 작품과 제목이 유사한 웹소설 〈플레이어가 과거를 숨김〉 〈회사원이 능력을 숨김〉 등의 작품도 주인공이 무언가 능력을 숨긴다는 핵심 설정을 공유한다.‘숨김’ 키워드가 떠오르기 전에
얼마 전 넷마블의 자회사에서 신인 걸그룹을 론칭했다. 〈캐치마인드〉 〈모두의 마블〉 〈세븐나이츠〉 등의 역작을 낸, 게임회사 ‘넷마블’이 맞다. 걸그룹의 이름은 메이브로, 멤버 4명 모두가 실존하지 않는 ‘버추얼 휴먼’이다. 어떤 이들은 이 그룹을 ‘학폭(학교폭력)과 사생활 논란이 없는 아이돌’이라 부른다. 실제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명칭이다.그런가 하면 메이브 뮤직비디오의 한 댓글에서는 ‘This made me realize that the things I love about humans are mostly th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