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천이라는 강이 있다. 경북 봉화에서 발원하여 영주, 예천, 문경을 지나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모래강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원래 모래강이었다. 지금은 4대강 사업으로 낙동강 본류 강바닥이 낮아지고 4대강 사업 마지막 댐인 ‘영주댐’이 들어서면서 모래와 물이 흐르는 줄기를 틀어막는 바람에 모래강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본류 바닥이 낮아진다는 의미를 잠깐 설명해야 할 것 같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낮은 곳의 강바닥이 더 낮아지면 어떻게 될까? 낮은 곳으로 가려는 물살은 높은 곳에서부터 빨라진다. 빨라진
4년 전 겨울. 아내와 난데없이 쌀케이크에 꽂혀 서울 성수동의 한 카페에 자주 갔다. 그날, 그 토요일 저녁에도 어김없었다. “오늘은 콩가루 쌀케이크를 먹을 거야.” “그럼 난 흑임자 먹어야지. 나눠 먹자.”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길모퉁이 왼쪽으로 돌아섰을 때 아내가 비명을 질렀다.“어머, 쟤 어떡해, 어떡해?”치즈색 길고양이가 차도에서 뒤집혀 버둥거리고 있었다. 4차선 도로의 찬 길바닥. 피가 흥건했다. 일어나려 힘써봐도 맘처럼 안 되는 듯했다. 판단할 틈이 없었다. 다른 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대로 두면 두 번, 세 번 치일
내 소유의 집이 있었다면 식물 임시 보호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재개발 단지에서 구조한 식물 대부분은 내 정원의 한 부분이 되어 자리 잡고 있었을 테니까. 나는 남의 집에 세를 주고 사는 형편인 데다 공간마저 한정적이어서 재개발 단지마다 끊임없이 버려지는 식물을 모두 품을 수 없었다. 더 좋은 집에 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식물을 나누게 되었다. 이 과정을 되짚어보니 이른바 ‘임시 보호’였다.식물을 키우다 보면 정원을 욕망하게 된다. 나의 정원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종종 생각해본다. 정원을 가꾸는 일을 누군가는 마음을 가꾸는 일이라고
“맴맴맴맴매~앰” 드디어 매미가 땅에서 나와 노래를 하기 시작했어요! 아파트에서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 돌아온 거지요. 여름이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매미 소리 때문에 잠도 설친다지만 매미를 좋아하는 우리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일 아침 아파트로 출근을 합니다. 껍질을 벗고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매미는 사냥하기도 쉬운데 참매미, 애매미, 쓰름매미 등 종류도 다양해서 골라 먹는 재미가 있어요. 직박구리와 곤줄박이, 새호리기처럼 매미를 좋아하는 경쟁자도 많지만 매미는 언제나 넘쳐나니 크게 경쟁할 필요는 없어요.나는 호매실
“생각해봐. 어미는 젖을 물리려고 아기를 계속 찾아. 그러다 아기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어미가 느끼는 절망감과 상실감, 그게 나도 보여, 눈에 확연히 보여. 못 하겠더라고, 도저히 못 하겠더라고.” 하재영 작가의 책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에 나온, 개 번식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의 이야기다. 이른바 ‘강아지 공장’이라 불리는 번식장 말이다.지난 7월에 직접 가봤다. 전남 함평에 있는 번식장이었다. 30년간 강아지 공장을 운영해온 60대 주인이 몸이 아프다며 폐업한 곳이다. 불법 번식장이 있는 비
언니 오빠들이 더 이상 기다리기 힘들었는지 “오늘이야!” 하고 외치고는 그동안 정들었던 둥지를 박차고 날아올랐어요. 나도 있는 힘을 다해 날개를 펼쳤는데 눈을 떠보니 길바닥이었어요. 까치 형아들이 저를 빙 둘러싸고 깍깍댔어요. ‘이제 죽었구나’ 하고 눈을 질끈 감았는데 ‘끼익’ 차 세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여자 사람이 다가왔어요. 까치 형아들은 슬금슬금 도망갔어요.여자 사람은 손으로 나를 덥석 잡더니 “차들이 다니는 길에서 어쩌려고 그러고 있어?” 묻고는 도로 바깥으로 나를 데리고 나왔어요. 나오자마자 차가 ‘쌩~’ 하고 지나갔어요.
수의사에게 ‘젖먹이 고양이를 길에서 주워왔다’라는 지인의 전화는 낯설지 않다. 2024년 한국에서는 동물을 ‘구조’하는 일에 제법 많은 사람이 뛰어드는 것 같다. 적어도 위험에 처한 것으로 보이는 동물을 일단 데려오는 것이 ‘좋은 일’로 여겨지는 것은 확실하다.특히 7월은 야생동물구조센터에 어린 야생동물이 넘쳐난다. 길고양이 새끼가 넘쳐나는 계절이기도 하다.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는 고양이를 받지 않는다. 야생동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 어린 고양이를 줍는다면, 고양이는 지자체가 운영하는 동물보호센터로 보내진다. 그럼에도 ‘냥줍했다
식물을 임보하려면 먼저 버려진 식물을 구조해야 한다. 내가 임보하는 식물은 대부분 서울 내 재개발 예정지의 쓰레기장 틈바구니에서 온다. 사람이 떠나 폐허가 즐비한 재개발 단지는 황망하고 스산한 분위기일 거라고 짐작된다. 하지만 자연의 생동감이 넘치는 곳이다. 이리저리 자유롭게 자라나는 식물들, 멋진 집을 지은 제비와 벌린 입만 집 밖으로 내놓고 밥을 기다리는 새끼들, 자동차가 많이 다니지 않으니 도로 한가운데서 느긋하게 일광욕하는 고양이 등 재개발 단지의 자연은 도심 속 숨겨진 정글이다.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기에 작은 골목길에서
2022년 봄. 팔랑이는 벚꽃잎과 함께 몽실이의 커다란 세상도 땅에 떨어졌다. 유일한 보호자인 80대 할아버지가 급성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둘은 단짝이었다. 산책할 때마다 곁을 지켰다. 할아버지의 지팡이 궤적을 따라 몽실이의 네 발도 부지런히 움직였다. 동네를 나란히 걸을 때면 사람들이 흐뭇하게 바라봤다. 할아버지는 그해 첫눈을 보지 못하고 그만 눈을 감았다. 텅 빈 집에 몽실이 홀로 남겨졌다. ‘무연고 강아지’가 되었다.김옥례 할머니는 요양보호사로 할아버지를 돌봤다. 장례를 마치며 사실 그의 역할은 끝난 거였다. 몽실이를 남겨둔
나는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곤줄박이예요. 크기가 참새만 한 우리를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뭉뚱그려 ‘참새’라고 부르기도 하죠. 5월13일 오늘은 새끼들이 인공새집 속 둥지 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이소(새끼가 둥지를 떠나는 것)를 하는 날이에요. 인공새집을 달아준 인간은 오늘 새끼들이 떠날 걸 어떻게 알았는지 새벽부터 나와 어슬렁거리고 있더군요. 거슬리긴 하지만, 집을 제공해준 건물주니 그냥 참고 넘어가야지 별수 있나요. 인공새집은 가로 12㎝, 세로 16㎝, 폭 12㎝의 작은 나무상자에 지름 3㎝짜리 구멍이 뚫려 있는 모양입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는 사육 곰을 구조하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생크추어리(sanctuary)를 만들고자 결성됐다. 강원도 화천 임시 보호시설에 살고 있는 곰들은 이따금 똥 속에 기생충을 같이 내어놓곤 했다. 자주는 아니고 몇 달에 한 번씩 보였다. 기생충은 개회충과 비슷하지만 조금 더 굵고 긴 모양의 곰 회충이다. 곰 농장주들은 숱하게 보아왔을 곰 회충은 공식적으로 한국에서 보고된 바 없었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곰을 많이 기르는 나라에서 곰 회충은 관심 밖이었다. 우리가 의뢰한 기생충은 충북대 기생충학 교실에서
나는 식물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우연히 재개발단지 옆으로 이사 와 쓰레기통에 화분째 버려진 식물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겁도 없이 유기 식물 구조 활동을 시작했다. 하나둘 버려진 식물을 구조하다 보니 자연스레 식물을 돌보는 사람이 되었다. 잘 키울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쓰레기장에 버려지면 100% 죽을 테니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이었다.다채로운 초록빛의 식물 친구들 모두 내가 품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공간은 한정되어 있었다. 역시 자연스럽게 주변에 식물을 키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구조
‘사랑한다’는 말에는 보통 ‘영원히’ 같은 말이 어울린다고 여긴다. 활활 타는 걸 증명해야만, 영속적이고 변함없으며 한결같아야만 사랑이란 단어를 쓰도록 허용받을 듯한. 그게 맞을까. 예를 들어, 결혼식장에서 신랑 신부가 이리 서약한다면 어떨까.“저 ○○○은 신랑(신부) ○○○을 ‘임시로’ 사랑하겠습니다.”‘임시’의 사전적 의미는 ‘미리 얼마 동안으로 정하지 아니한 잠시 동안’이다. 잠시라는 명확한 시간의 한계.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으나, 길지는 않을 거란 느낌. 영원에 대한 염원마저 빼앗는 말이라 마음에 품고 살지는 않았다.이상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