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서점에서 ‘엄마표’라는 단어로 검색을 해본 적이 있다. 도대체 ‘엄마표 영어’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해본 일이다. 엄마표 영어와 관련된 책이 가장 많았고, 엄마표 과학, 엄마표 종이접기도 있었다. ‘아빠표’도 검색해보았다. 어쩐지 육아에 관한 한 엄마와 비슷한 책임이 있어 보이는 아빠에 관한 상상력은 빈곤했다. 〈엄마라는 이상한 세계〉를 읽으며 당시 생각이 났다. 저자가 ‘부모라는 기계적 중립의 단어를 버리고 엄마를 전면에 내세운 이야기를 쓰고자’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조기 진통으로 임신 29주 만에 세상에 나온 저자의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신생아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퇴원 이후에도 발달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여러 검사를 통과해야 했다. 그중 하나인 재활의학과 첫 외래 날, 교수는 지나가듯 말했다. “엄마는 왜 조산을 했을까?” 아이의 발달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육아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왜 조산을 한 건지 과거를 돌아보며 끊임없이 이유를 찾고 육아에서 겪는 어려움이 모두 그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자주 모순적 상황에 놓였다. 의도와 목표에 따라 아이를 만들어가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는 생각과 아이의 고유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시각이 사납게 충돌했다. 발달이 느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커뮤니티도 마찬가지였다. 아이 치료에 매진해야 한다는 생각과 그에 집중하느라 아이와의 시간을 즐기지 못한다는 죄책감 사이에서 엄마들은 괴로워했다. 어떻게 해도 만족스러움과 거리가 멀고 죄책감과 친밀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누군가 모순 속에서 뒹구는 동안 배우자는 대책 없는 ‘긍정의 화신’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이 시대의 엄마들이 맞닥뜨린 명령이 얼마나 모순적이고 실현 불가능한지’를 담고 있다. 아이의 장애와 질병을 교정하고 소질을 계발하면서도 아이를 그 자체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동시에 성장 과정에서 부딪히는 문제가 자존감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지켜내야 하며 그 과정에서 ‘괴물 부모’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교육학을 공부하고 교육 시민단체에서 일해온 저자가 개인의 경험을 사회적인 이야기로 확장한다. 육아에 관한 에세이가 많은 것 같아도, 여전히 더 많은 당사자의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느끼게 만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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