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독일 남부 츠비카우에 있는 폭스바겐 공장에서 작업자들이 전기차 ID.3를 조립하고 있다. ⓒEPA
2023년 5월 독일 남부 츠비카우에 있는 폭스바겐 공장에서 작업자들이 전기차 ID.3를 조립하고 있다. ⓒEPA

올 상반기, 독일에서는 전기자동차 18만4100대가 신규 등록되었다. 이는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16.4% 감소한 수치다. 이전까지 독일의 신규 전기차 등록 대수는 계속해서 증가해왔다. 지난해에는 총 52만4200대로 역사상 가장 많은 신규 등록 대수를 기록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전기자동차 판매가 부진하면서 2030년까지 독일 내 전기자동차를 1500만 대로 늘리겠다는 독일 정부의 목표 달성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2024년 4월까지 독일에 등록된 전체 전기자동차는 약 150만 대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향후 6년 동안 지금보다 전기차 대수가 10배가량 증가해야 한다.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은 독일 정부가 내세우는 기후위기 대응 전략의 핵심 중 하나다. 독일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약 20%가 교통 분야에서 발생하며, 이 중 60%가 자가용에서 나온다. 독일 정부는 2030년까지 전체 전기 사용량의 80%, 2035년까지 사용량의 대부분을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재생에너지 전기 확대와 전기자동차 전환이 함께 이루어져야 교통 분야에서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독일 자동차클럽(ACDC)은 주간지 〈포커스〉 인터뷰에서, 정부가 세운 ‘2030년 전기차 목표’는 현재 상황에서 환상에 가까우며 목표를 달성하려면 지금부터 독일의 신규 등록 자동차의 절반 이상이 전기차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올해 신규 등록 자동차의 12%가량만 전기차일 것으로 예상했다.

독일 언론은 전기자동차 판매 부진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원금 폐지를 들었다. 지난해 12월17일부터 독일 정부는 예산 문제로 신규 등록 전기자동차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중단했다. 지난해 11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 판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정부가 코로나19 대응 예산 중 사용하지 않은 600억 유로(약 90조원)를 기후변화기금으로 전용한 것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다. 헌법 역할을 하는 기본법은 정부의 부채 한도를 규정해놓았다. 다만 자연재해 같은 위기 상황에는 예외 조항을 두고 있어서, 독일 정부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더 많은 부채를 조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해당 부채 중 남은 금액을 다른 용도로 전용한 것을 두고 헌재가 위헌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2016년부터 2023년까지 정부는 전기자동차 지원금으로 약 100억 유로를 썼다. 지원금을 받은 차량은 210만 대에 이른다. 2023년 기준 독일 정부는 4만 유로(약 6000만원) 이하 전기차에는 최대 4500유로(약 670만원), 4만∼6만5000유로(약 9700만원) 전기차에는 최대 3000유로(약 45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했다. 당초 독일 정부는 2024년 연말까지 전기차 보조금을 지급할 계획이었지만, 헌재의 판결 이후 예산 문제로 중단했다.

지원금 중단 발표 이후 업계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을 전기차 판매가 급격히 감소할 것을 우려했다.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가격이 높은 전기차 구매에 정부지원금이 큰 동력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뿐만 아니라 경기침체와 고금리로 전기차 판매가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었다. 지원금 중단이 발표되기 전이었지만 지난해 11월에는 전년 동기 대비 신규 전기자동차 등록 대수가 약 22% 줄었다.

지원금 중단만이 전기차 판매 감소의 원인은 아니다. 지난 7월 시장조사기관 아피니오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60% 이상이 전기자동차가 내연기관 자동차에 비해 효율적이지 않다고 평가했으며, 절반 이상이 가까운 미래에 전기차를 구매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중복 응답이 가능했던, 전기차를 선택하지 않는 원인에 대한 응답에선 42.1%가 ‘주행 가능 거리’를, 34.2%가 ‘높은 가격’, 29.7%가 ‘충전소 문제’를 들었다. 이 외에 ‘가정용 충전설비 설치 비용(21.7%)’ ‘불안정한 기술(18.8%)’도 전기차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전기차 판매 부진과 함께 독일 자동차 회사 위기설도 피어나고 있다. 이들 회사는 전기차 생산을 위해 큰 비용을 투자했지만, 판매 부진으로 인해 생산시설 가동률을 줄이는 상황이다. 폭스바겐 그룹의 경우 자회사 아우디의 고급 전기자동차 기종을 생산하는 브뤼셀 공장을 폐쇄할지 저울질하고 있다. 폭스바겐 그룹이 자동차 생산 공장의 문을 닫는 일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독일 자동차 회사들은 매출 하락을 겪고 있다. 올해 2분기에 아우디의 경우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11.3%, 폭스바겐은 5.2%, 메르세데스 벤츠는 4% 줄었다. BMW만 2% 매출 증가를 기록했다.

독일이 중국 차 관세 반기지 않는 까닭

최근 BMW 그룹의 생산 책임자인 밀란 네델코비치는 독일 지역신문 〈뮌헨 메르쿠어〉와 한 인터뷰에서 전기자동차 판매 속도를 높이기 위해 고속도로에 전기차 전용도로 등을 설치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해 화제를 모았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정부지원금 같은 형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전기차를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선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기차 무료 주차장 등도 전기자동차의 매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 4대 모터쇼로 꼽히는 독일 IAA 모빌리티가 2023년 9월4일 독일 뮌헨 박람회장에서 열린 가운데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인 중국 비야디가 유럽시장 진출 계획을 밝히며 신차를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 4대 모터쇼로 꼽히는 독일 IAA 모빌리티가 2023년 9월4일 독일 뮌헨 박람회장에서 열린 가운데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인 중국 비야디가 유럽시장 진출 계획을 밝히며 신차를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 전기자동차와의 경쟁 또한 독일 자동차 기업에 위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가장 거대한 전기자동차 시장인 중국에서, 독일 자동차 회사는 중국 회사에 밀리고 있다. 독일 공영방송 뉴스 프로그램 〈타게스샤우〉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에서는 전기차 약 630만 대가 판매되었다. 독일 내 전기차 판매량의 10배가 넘는 수치다. 하지만 중국에서 팔리는 전기차 대부분은 중국 기업의 것이었으며, 가장 많이 팔린 20개 모델 중 외국 기업은 테슬라가 유일했다.

다른 한편으로 독일 업체는 독일과 유럽 시장에서도 저렴한 중국 자동차와 경쟁해야 한다. 독일 연방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전기차 3만1500대가 중국에서 수입되었는데, 이는 독일에서 수입하는 전기차의 40.9%에 해당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이 비중이 29%였다. 2023년 독일에서 팔린 중국산 자동차는 12만9800대였다. 이는 2022년 대비 약 3배 증가한 수치다. 2020년과 비교하면 10배 증가한 셈이다. 독일의 여론조사기관 ‘알렌스바흐’가 지난 4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특히 좋은 전기자동차가 생산되는 나라가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29%가 중국이라고 답했다. 독일은 20%로 2위였고, 일본-한국-미국이 그다음이었다.

유럽연합은 7월5일부터 11월까지 중국산 전기자동차에 17.4∼37.6% 상계관세를 임시 적용하기로 했다. 유럽연합은 10월 말 투표를 통해 상계관세를 확정 관세로 전환할지 결정한다. 상계관세는 수출국의 보조금 등으로 수입국의 산업에 불이익이 발생할 경우 보조금이 지급된 품목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중국은 유럽연합의 조처에 반발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상태다. 하지만 독일 자동차 업계와 정부는 유럽연합의 해당 조처에 우려를 표했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자동차 시장으로 미국, 영국에 이어 독일 자동차를 세 번째로 많이 수입하는 나라다. 여기에 독일 자동차 회사들 또한 수출할 자동차 중 일부를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어 이번 일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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