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와 기후변화로 무등산수박의 출하량이 줄어들고 있다. ⓒ무등일보
고령화와 기후변화로 무등산수박의 출하량이 줄어들고 있다. ⓒ무등일보

400년 역사의 무등산수박이 멸종될 위기에 처했다. 조선시대 임금님 수라상에도 올라갔다는 진귀한 이 수박은 기술이 발달한 현재도 ‘비싸서 못 먹는’ 음식의 대명사다. 20kg대 무등산수박 한 통이 50만원을 가뿐히 넘으니 그야말로 ‘과일계의 에르메스’라 불릴 만하다.

무등산수박은 토종 수박으로 이 지역에서는 ‘푸랭이’라고 부른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무등산 표고 300m 일대에서만 자란다. 무등산수박 씨앗을 다른 지역으로 옮겨 심으면 일반 수박이 나온다고 한다. 무등산수박은 일반적인 수박과 한눈에 구별할 수 있다. 2~3배 큰 데다 특유의 검은 줄무늬가 없는 진초록색 껍질을 갖고 있다.

무등산수박이 귀한 취급을 받는 이유는 재배하기가 무척 까다롭다는 데 있다. 매우 한정된 지역에서만 나는 건 둘째치고 환경에 몹시 민감해 농부들이 거의 육아를 하다시피 키워내야 한다. 양분은 얼마나 많이 먹는지 1m에 이르는 깊은 구덩이를 파고 퇴비를 꽉 채워 넣고도 줄기가 나와서 뻗을 때쯤이면 가장 좋은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는 제거해야 한다. 햇볕이 너무 뜨거워도, 그늘이 져도 안 되는데 유기질 비료만 뿌려야 한다고 한다. 거기에 날씨가 조금만 변해도 작황이 뚝 떨어진다.

요즘 흔히 쓰는 표현으로 ‘금쪽이’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오래전에는 상중인 사람은 밭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했다고 한다. 요즘도 ‘기원제’가 남아 있을 정도다. 어느 환경에서도 자랄 수 있도록, 하다못해 수율이라도 높이려고 시도한 품종개량도 모두 실패했다.

그러나 무등산수박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한 것은 까다로운 재배 방식 때문만은 아니다. 수백 년을 이어오며 온갖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은 존재가 아니던가. 멸종위기 근저에는 재배 농가의 고령화와 기후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무등산수박을 재배할 수 있다는 건 오랜 시간 축적된 노하우를 가진 장인이라는 의미다. 국내 뿌리산업 현장에서도 기술을 이을 젊은이가 사라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처지다.

재배 농가 2000년 30가구에서 현재 8가구로

현장에서 장인이 사라져가는 근본 이유는 고된 노동에 비해 가치를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다. 무등산수박협동조합 측에 따르면 20년 전과 비교해 한 통당 1만원 오른 게 전부다. 그런데 생산량은 같은 기간 3000여 통에서 지난해 기준 1870통으로 줄어들었다.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무등산수박 정보화마을 기슭 노지에서 8월1일 무등산수박 재배 농민들이 수박계의 명품으로 불리는 ‘무등산수박’을 출하하고 있다 ⓒ무등일보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무등산수박 정보화마을 기슭 노지에서 8월1일 무등산수박 재배 농민들이 수박계의 명품으로 불리는 ‘무등산수박’을 출하하고 있다 ⓒ무등일보

생산량이 감소한 것은 갈수록 높아지는 기온 때문이기도 하다. 문광배 무등산수박협동조합 총무(52)는 “출하량을 높이려고 재배 면적을 늘려도 기후가 변화하면서 고온 장해(피해)로 수박이 막 죽어가고 있어 수확량이 떨어진다. 일반 수박은 2월에 심어서 5~6월에 출하하지만, 무등산수박은 5~6월에 심어 여름철 고온을 견뎌낸 뒤 수확하기 때문에 온도에 취약하다”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해가 지날수록 이탈 농가가 늘고 있다. 고령화로 농사짓기를 그만두거나 덜 힘들고 돈이 되는 다른 작물로 갈아타는 것이다. 2000년 30곳이던 무등산수박 재배 농가 수가 2013년에는 13가구로, 현재는 8가구로 줄었다. 전체 재배 면적은 2.6㏊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5년 안에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무등산수박 재배 농가 측은 지자체가 나서지 않으면 명맥이 끊기고 말 것이라 우려한다. 기술을 전수할 후계농을 지자체 차원에서 발굴하고 육성해달라는 요구다.

“자연적 씨앗으로 재배하는 무등산수박은 발화율이 10%도 안 된다. 이마저도 고온에 장마까지 버티고 남는 건 1000개 중 10개에 불과하다. 행정(지자체)에서 다음 세대를 준비하지 않으면 명맥이 끊기는 건 시간문제다.” 최연소 무등산수박 재배농이기도 한 문광배 총무의 목소리가 ‘소멸의 시대’를 향한 경고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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