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KBO리그의 역대 일본인 선수(재일동포 제외)는 모두 일곱 명이다. 빠르면 내년부터 훨씬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아시아쿼터’를 논의 중이다. 기존 외국인 선수와는 별도로 아시아 지역 출신 선수를 뽑는다는 구상이다. 10개 구단 사장들이 참석하는 의결 기구인 이사회는 당초 7월31일 아시아쿼터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7월16일 단장회의에서 “세칙을 더 다듬어서 안건으로 올리자”는 의견이 나와 아시아쿼터 논의가 연기됐다.
KBO 관계자는 “내년 시행을 위해서는 올해 안에 이사회에서 논의를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듬어야 할 세부 내용으로는 ‘아시아’ 지역의 범위, 이중국적 문제, 상위 리그 경력, 연봉 수준, 포지션 등이 꼽힌다.
종목을 막론하고 각국 프로리그 사이에는 수준 차이가 있다. 그래서 국내 선수 보호 등을 이유로 외국인 선수 보유와 출장에 제한을 둔다. 국제경제에 비유하면 일종의 보호무역이다. 세계 야구 최고봉인 미국 메이저리그에는 사실상 외국인 선수에 대한 제한이 없다. 하지만 한국을 비롯해 일본, 타이완 등의 리그에서는 제한 규정을 둔다. 아시아쿼터는 국내 프로축구·농구·배구 등에서 이미 시행하는 제도다. 기존 외국인 선수 보유나 출장 제한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 쿼터(Quota·할당)라는 이름이 붙었다.
국제화 수준이 높고 국가 간 선수 교류가 활발한 축구가 원조다. 일본 프로축구 J리그가 2008년 최초로 아시아쿼터 제도를 만들었고, 이후 아시아축구연맹(AFC)이 각 회원국에 권장했다. 한국 프로축구 1부 리그인 K리그1은 2009년 이 제도를 도입했다. K리그1은 외국인 선수 보유 한도 자체를 늘리며 내년부터 쿼터제를 폐지한다. 하지만 K리그2는 동남아시아 지역 선수에 한해 내년에도 쿼터제를 유지한다. 프로농구 V리그는 2020-2021시즌 일본을 시작으로 아시아쿼터제를 실시했다. 이후 필리핀·타이완·베트남·인도네시아·타이·말레이시아 출신 선수로 적용 범위를 넓혔다. 프로배구 V리그는 2023-2024시즌부터 이 제도를 도입했다.
아시아쿼터는 구단 입장에서 본질적으로 ‘2선급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는 방안이다. KBO리그는 외국인 선수가 전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2022년 삼성 라이온즈의 경우 외국인 선수 세 명의 WAR(대체선수 대비 기여승)이 팀 전체의 53.1%를 차지했다. 그만큼 우수한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는 것은 구단에 사활이 걸린 문제다.
여기에 저출생 현상 심화로 머지않아 국내 아마추어에서 공급할 선수 수가 급감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있었다. KBO 관계자는 “사무국 자체적으로 아시아쿼터에 대한 연구를 했다. 이와는 별도로 올해 5월 단장회의에서 구단들이 아시아쿼터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라고 말했다. 리그 사무국과 구단들이 공통적으로 제도 도입 필요성을 느꼈다는 의미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를 무한정 늘릴 수는 없다. 국내 프로선수 및 아마추어의 반발이라는 문제가 있다. 외국인 선수가 너무 늘어나면 리그 흥행과 기량 향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과거 타이완 프로야구가 그랬다.
외국인 선수 영입 비용도 높아졌다. KBO리그 외국인 선수의 절대다수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나 마이너리그 출신이다. 미국 프로야구는 2020년대에 마이너리그 구조조정을 했다. 40라운드까지 진행하던 아마추어 드래프트를 20라운드로 줄이고, 7단계이던 마이너리그를 5단계로 감축했다. 대신 메이저리그 최저 연봉과 마이너리그 선수 연봉을 인상했다. 이러면 한국 구단이 영입 가능한 선수 풀이 줄어들고, 이들의 기대 연봉이 높아지게 된다.
그래서 ‘적당한 몸값’에 일정 수준 이상 기량을 갖춘 외국인 선수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KBO가 2022년 ‘육성형 외국인 선수’ 제도를 도입한 배경이다. 일본 프로야구(NPB) 제도를 참고한 것으로, 기존 외국인 선수보다 훨씬 적은 몸값인 30만 달러(약 4억원) 상한선을 적용받는다. 하지만 어떤 구단도 육성형 외국인 선수와 계약하지 않았고, 올해 야구 규약에선 관련 조항이 사라졌다. 대신 기존 외국인 선수가 부상당했을 경우 별도 선수와 단기계약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육성형 선수도 기존 외국인 선수와 같은 ‘3명 보유 및 출장’ 제한을 받는다. 2군에서 뛰다 기존 외국인 선수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투입하는 ‘예비군’ 개념이다. 하지만 구단 입장에선 기존 외국인 선수에게 문제가 생기면 비용을 더 들이더라도 우수한 선수를 새로 뽑는 게 더 합리적이다. 일본 프로야구(NPB)는 최근 워낙 외국인 선수 성공 확률이 떨어져서 구단들이 저연봉 육성 선수를 다수 보유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가 팀 성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KBO리그에선 사정이 다르다.
오스트레일리아 포함될까
그래서 등장한 대안이 ‘아시아쿼터’다. KBO가 명시적으로 출장 제한에 대해 언급한 적은 없지만 ‘기존 외국인 3명+아시아쿼터 1명 동시 출장’을 염두에 두고 제도를 설계하고 있다.
야구는 아시아 지역에서 전력 불균형이 매우 심하다.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는 한국· 일본·타이완·중국 등 4개국이 자동 출전권을 얻고 나머지 국가 대표팀은 예선 격인 아시안컵을 거친다. 중국 선수들은 KBO리그에서 뛸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야구 강국 타이완의 아마추어 유망주들은 연봉 수준이 높은 미국이나 일본 프로야구 진출을 우선순위에 둔다. 자국 프로야구인 CPBL은 구단이 늘어나고 선수 연봉도 상승하는 추세다. 타이완 야구 전문가인 김윤석씨는 “KBO가 육성형 외국인 선수 연봉 상한선을 삼았던 30만 달러는 CPBL 구단 주전급이 받는 연봉보다 많다. 하지만 해외 진출 리스크를 감수하기에는 ‘애매하게’ 많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KBO리그 구단은 야수보다 선발투수를 선호한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뛴 일본인 선수 7명 중 야수는 단 한 명뿐이다. CPBL 구단은 대개 선발투수 다섯 자리 중 3~4명을 외국인으로 채우는 식으로 운영한다. KBO리그에서 통할 만한 선발투수 자원을 찾기 어렵다. 오스트레일리아 프로야구(ABL)의 수준은 KBO리그에 못지않지만 이 나라를 아시아쿼터에 포함시킬지는 아직 논쟁 중이다.
아시아쿼터 관련해 주목해야 할 곳은 역시 일본이다. 일본 프로야구(NPB) 연봉 수준은 KBO리그보다 높다. 올해 평균 4713만 엔(약 4억2926만원)으로 KBO리그(1억5495만원)의 2.77배 수준이다. NPB 주전급 선수가 아시아쿼터에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일본은 야구 인구가 미국 다음으로 많다. 일본 야구선수 진로 희망 1순위는 NPB, 2순위는 직업 안정성이 좋은 사회인 야구 입단이다. NPB나 사회인 야구단에 입단하지 못했거나, 방출됐거나, 방출 위기에 처한 선수가 현실적으로 아시아쿼터 대상이다.
10년 전이라면 이런 선수가 KBO리그에서 활약할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 야구는 최근 10년 사이에 기량이 급격히 향상됐다. 지난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우승을 차지한 NPB뿐만이 아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대학야구 등록 선수 중 패스트볼 최고 구속이 시속 150㎞ 이상인 투수가 무려 73명이었다. 사회인 야구에는 91명, 독립 리그에는 9명이 있었다. 일본 사회인 야구 국가대표팀 관계자는 “지금 투수들이 수년 전보다 훨씬 강한 공을 던진다”라고 말했다.
해외 진출에 대한 선호도도 낮지 않다. NPB는 매년 10월 미야자키현에서 2군급 선수들을 상대로 교육리그를 개최한다. 지난해 교육리그 중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선수 299명 중 35.8%가 ‘해외 구단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변했다.
국내에서 아시아쿼터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탄 계기도 NPB 경험 없이 일본 독립 리그에서만 뛴 투수 시라카와 게이쇼의 호투였다. 올해 시작된 단기계약 외국인 선수로 입단한 시라카와는 평균 시속 145㎞가 넘는 포심 패스트볼을 앞세워 11경기에서 4승을 따냈다. 변화구 구사 능력도 KBO리그에선 중상급 정도다. NPB 관계자는 “독립 리그나 사회인 야구에 시라카와보다 더 뛰어난 투수가 많다. 이들 중에 KBO리그에 관심을 가질 투수가 여럿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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