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특별법이 바뀐다. 8월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전세사기 특별법(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이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현재 전세사기 피해자 대부분은 임대인(가해자)을 통해 전세금을 돌려받기 어렵다. ‘보증금 반환청구 소송’에서 이기고도 돈을 돌려받지 못하면, 남은 방법은 경매에 넘어간 집(전세사기 피해 주택)의 낙찰금을 배당받는 것뿐이다. 그마저도 후순위인 피해자들은 전세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2023년 2월부터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절망 끝에 연달아 사망한 후 전세사기 피해자를 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국회는 개별 법률이 정한 내용에 대해 예외 사항을 규정하려고 할 때, ‘특별법’을 만든다. 피해자들은 실질적인 구제 방안을 담아 전세사기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했고, 그해 5월 법이 만들어졌다. 현행 법에 새로운 특례를 적용해 전세사기 피해자를 지원한다는 목적이었다. 대표적으로 전세사기 피해자로 확인되면, 원래 살던 집(전세사기 피해 주택)에 대한 경매 ‘우선매수권(최고가 낙찰액으로 경매 물건을 먼저 살 수 있는 권리)’을 주고 경매 자금을 대출해준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사각지대가 있다면 6개월마다 법안을 수정·보완하겠다는 단서도 달렸다.
그러나 이 제도는 실효성이 별로 없었다. 현재까지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된 2만여 명 중 대다수가 전세사기 특별법에 따른 정부 지원을 이용하지 않는(못하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전세사기 특별법 제정 이후 정부 지원은 우선매수권 사용 418건, 전세금 대환대출(기존 전세대출을 저금리 대출로 옮기도록 돕는 대환대출) 1985건, 주택 구입자금 대출 550건 등에 그쳤다(7월31일 기준). 피해자 상당수가 이미 전세금 대출을 받은 마당에 경매에 나설 만큼의 여유자금이 있을 리 없었다. 법안을 수정·보완하겠다는 약속 역시 6개월이 지나도록 진척이 없었다. 5월28일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야당 단독 표결로 이른바 ‘선구제 후회수’ 방안이 담긴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이튿날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자동 폐기됐다.
제22대 국회는 ‘여야 합의’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여야 간 피해자 지원 방식에 대한 견해 차이가 분명했지만, 정부·여당안을 중심으로 야당의 요구를 반영했다. 22대 국회 개원 후, 첫 여야 합의 법안이다. 위기의식이 컸다. 지금도 도처에서 전세사기 피해가 벌어지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세입자가 돌려받지 못한 ‘전세금 사고’는 1만4250건(3조818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2조2637억원)보다 사고액 규모가 36.1% 늘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어떤 대책이 새롭게 마련됐을까?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까? 법안 내용을 정리했다.
Q 새로 바뀌는 ‘전세사기 특별법’의 핵심은?
A 전세사기 피해자가 원래 살던 집(전세사기 피해 주택)에서 최대 10년간 살 수 있게 됐다. 공공임대주택 입주 형태이고, 임차료는 내지 않는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경매 ‘우선매수권’을 받는 기존 대책 외에 새로운 선택지가 생긴 셈이다. 어떻게? 한국주택토지공사(LH)가 피해자에게 우선매수권을 넘겨받아 전세사기 피해 주택 경매에 참여한 뒤, 경매 차익(LH 감정가-낙찰가)으로 임대료를 지원한다. 예컨대 ‘LH 감정가’가 1억원인 전세사기 피해 주택을 LH가 7000만원에 낙찰받으면, 차액인 3000만원을 임대료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경매 차익이 부족한 경우, 국가 재정으로 지원한다. 피해자가 10년을 채우고도 더 살기를 원하면 공공임대주택 수준의 임차료를 내고 최대 10년까지 추가로 거주할 수 있다.
이강훈 변호사(주택세입자 법률지원센터 ‘세입자114’ 센터장)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최소한의 탈출구’가 마련됐다. 다만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대체로 주택 이동이 잦은 젊은 계층이다. 피해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효용은 다를 수 있다. 앞으로 피해자들이 얼마나 제도를 이용하는지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추후 제도 보완을 위해 국토교통부가 6개월마다 전세사기 유형과 피해 규모에 관한 실태조사를 진행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Q 피해 주택에서만 계속 살아야 하나?
A 다른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하거나 원래 살던 집에서 퇴거하고 남은 경매 차익을 받는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다(경매 차익이 발생하지 않으면 돈을 받을 수 없다). 민간임대주택으로 가기를 원하는 전세사기 피해자는 ‘LH 전세임대’라는 대안도 있다. 이 경우에는 LH가 피해 전세금 이하로 전세 계약을 맺은 민간임대주택에서 최대 10년까지 임차료를 내지 않고 살 수 있다.
피해자의 선택지를 늘리는 방향이지만, 현실적으로 피해자가 입주할 수 있는 공공임대·전세임대주택 물량이 충분한지, LH가 전세사기 피해 주택을 얼마나 낙찰받을지 등을 두고 의문이 제기된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LH가 (피해 주택을) 매입하지 않으면 피해자들에게 실질적 구제책은 없다. 그런데 매입 과정에서 주택의 품질 등을 두고 공공이 이런(열악한) 주거를 매입해서 제공하는 게 맞느냐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피해 주택 매입, 피해자에게 적합한 공공임대·전세임대주택 제공을 위한) LH 예산과 전담 인력도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으로 기존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공급 계획이 줄어들지는 않을까?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은) 별도로 추가 예산을 확보해서 추진하는 사업이다. 예전부터 해오던 기존 사업도 중요하고, 유지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Q 누가 지원을 받을 수 있나?
A 이번 개정으로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 범위가 확대됐다. 우선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보증금 한도가 종전 3억원에서 5억원으로 올랐다. 별개로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가 2억원을 추가 인정할 수 있어, 상황에 따라 최대 7억원까지 피해 금액으로 인정된다. 법 개정 전에는 집을 점유하지 못했다(주택 인도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제외됐던 이중계약 사기 피해자(기존 세입자가 전세금을 돌려받지 않은 상황에서, 전세 계약을 새로 맺은 세입자가 입주하지 못한 경우)도 특별법 적용 대상에 포함됐다. LH는 신탁사기 피해 주택, 위반 건축물도 적극적으로 매입하고 ‘10년간 공공임대주택 무상 거주’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미 경매 절차가 끝나 집이 넘어갔다면? LH가 피해 주택을 경매로 매입할 순 없지만, 마찬가지로 최대 10년간 다른 공공임대·전세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벽에 금이 가고 비가 새는 등 방치된 피해 주택에 거주하는 피해자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개정 법은 피해 주택이 위치한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장이 해당 주택의 안전을 관리·감독할 수 있도록 했다.
Q 더불어민주당의 ‘선구제 후회수’ 안과 차이는?
A 당초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은 야당 단독 표결로 한 차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적이 있다(이튿날인 5월29일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자동 폐기됐다). 당시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이 주도한 특별법 개정안에는 이른바 ‘선(先)구제 후(後)회수’라고 불리는 전세 채권 매입 방침이 담겨 있었다. 일단 주택도시보증공사(HUG) 같은 기관이 전세금(임차보증금 반환 채권)을 공공 매입해, 피해액 일부(30% 수준)를 피해자에게 돌려준다. 그런 뒤 채권 추심과 매각을 통해 회수하는 방식이다. 문진석 민주당 의원(국회 국토위 야당 간사)은 “사각지대 없이 모든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해서는 민주당 안이 최적이라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피해자의 안타까운 죽음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을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데 많은 고민이 있었다”라고 정부안에 합의한 이유를 밝혔다.
이철빈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피해자 대책위) 공동위원장은 “둘 다 일장일단이 있다”라고 평가했다. “여러 피해자들의 권리 관계가 얽혀 있는 다가구주택(임대인 한 명이 건물의 모든 세입자와 계약한다)이나 다세대주택 공동담보(개별 호실 여러 채를 공동담보로 하는 근저당권) 같은 경우는 ‘LH 주택 매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때는 상대적으로 ‘선구제 후회수’로 전세 채권을 먼저 매입하는 게 피해자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된다. 정부 대책으로 지원 범위가 확대되고 피해자의 선택지가 넓어진 것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방안이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Q 앞으로 남은 과제는?
A 피해자 대책위는 경매 차익을 받지 못하는 피해자에 대한 ‘최소금액 보장’을 요구했지만 개정안에 반영되지 않았다. 이철빈 위원장은 “피해자들이 LH에 우선매수권을 양도해 모든 권리를 포기한 대가로 최소한의 금액을 보장해달라는 건 단 한 번뿐인 경매 과정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안이다. 앞으로도 이 내용과 함께 외국인 피해자 지원 확대, 다가구주택이나 다세대주택 공동담보 피해자 지원에 대한 개선 요구를 계속하려 한다”라고 말했다. 국회 국토위 소속 이소영 민주당 의원은 “경매 차익이 발생하지 않은 피해자는 공공임대주택에서 최장 10년간 임대료를 감면받는 것 말고는 특별한 지원책이 없다. 대부분 20~30대인 피해자들이 전세사기 당한 주택에 10년간 ‘공짜’ 거주하는 것 말고 다른 구제 방법이 전혀 없다면, 10년간 피해 상황에 그대로 갇혀 있어야 한다. 지원책이 오히려 족쇄가 되는 상황이 우려된다. 추후 피해자에게 제공하는 (공공)임대주택의 주거 기준을 상향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2023년 4월28일 원희룡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세사기가 ‘사회적 재난’이 아니라고 했다. 그뒤 임명된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2024년 5월13일 전세사기 피해자가 “경험이 없다 보니 덜렁덜렁 계약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석 달 후, 여야 합의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적극적으로 피해를 알리고 문제 해결을 요구했던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철빈 위원장은 피해자들에게 부탁의 말을 전했다. “처음엔 특별법도 만들려고 하지 않았는데, 지난해 특별법이 제정되고 또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 과정이 절박한 피해자들의 마음에 차지 않고, 느린 속도라는 걸 안다. 제도가 닿지 않아 일상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하지만 바뀌고 있다. 그러니 우리의 삶을 잘 지키면 좋겠다. 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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