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8일 서울 관악경찰서 수사과에서 근무하던 ㄱ 경위(31)가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앞서 약 2주 전 승진 임용식이 있었지만, 주위 사람들은 ㄱ 경위가 평소에도 업무량이 많아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가까운 동료에게 “(수사팀에서) 나가야겠다” “매일 출근하면 심장이 아프다” “숨이 안 쉬어진다”라며 심리적 고통을 호소했다. 7월22일에는 충남 예산경찰서 경비과에서 일하던 ㄴ 경사(28)가 숨졌다. 유족은 ㄴ 경사가 2월에 해당 부서로 발령을 받자마자 제22대 총선이 열리고, 계속된 폭우로 인해 동원 업무가 잦았다고 말했다.
7월26일에는 여드레 전 퇴근 시간이 지난 뒤에도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다 뇌출혈로 쓰러졌던 서울 동작경찰서 경무과 소속 ㄷ 경감(43)이 끝내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같은 날 서울 혜화경찰서 수사과에서 근무하던 40대 경감이 한강에 투신했으나 구조됐다. 이들까지 포함하면 불과 열흘 사이에 업무 부담을 토로하던 경찰관 세 명이 숨지고, 한 명이 목숨을 끊으려 한 것이다.
지방 경찰서에서 수사팀을 이끌고 있는 한 경찰 지휘관은 “길게는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 때부터, 짧게는 지난 2월 조직개편 때부터 곪아온 문제다. 비유하자면 내부 압력이 꾸준히 높아진 밥솥이 이제 터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밥솥’의 압력이 높아진 원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업무는 늘었는데 인력은 줄고 압박은 심해졌다. 물리적으로 감당할 수가 없다.”
2020년 1월 검사의 수사 지휘권을 폐지하고, 경찰에게 수사 종결권을 주는 형사소송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2022년 4월에는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중 하나인 검찰청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로써 검찰이 직접 수사하는 범위는 6대 범죄(부패·경제범죄·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에서 2대 범죄(부패·경제)로 줄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이루어졌지만, 더 많은 사건을 담당하게 된 경찰의 인력과 예산은 그대로였다. 경찰청 한 관계자는 “수사권 조정 자체가 문제라는 게 아니다. 법은 통과가 됐는데 그에 맞는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6대 범죄 중에서 4대 범죄가 경찰로 넘어왔으면 그만큼 수사관 인력과 예산도 따라와야 하지 않나. 그런데 이전과 똑같은 상황에서 더 많은 범죄를 처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남아 있는 수사관 70% 이상이 저연차
그뿐 아니라 법무부는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이하 수사준칙)’을 개정했다. 2023년 11월부터 경찰이 고소·고발장을 반려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고소·고발 반려제’는 경찰이 악성 민원이나 적절한 요건을 갖추지 못한 고소·고발 건을 접수하지 않고 되돌려 보낼 수 있는 제도다. 경찰은 그동안 연평균 170만 건 중 대략 12만 건(7.1%)을 반려해왔는데, 수사준칙 개정으로 더 이상 반려를 못하게 되자 일선에서 느끼는 업무 부담은 더욱 가중됐다. 경찰청은 8월5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올해 1~5월 고소·고발 건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 증가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 지휘부는 수사 인력 지원보다 예방 순찰을 통한 치안에 방점을 두고 있다. 앞서 2023년 7월21일 서울 신림역에서 칼부림 사건이 나고 8월3일 경기 분당 서현역 인근 쇼핑몰에서도 칼부림 난동이 벌어지자, 그달 말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묻지마 범죄’에 근본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경찰 조직을 치안 중심으로 구조 개편하고 예산 배정도 조정하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대통령의 발언이 있고 약 보름 만에 경찰청은 조직개편안 구상을 발표했다.
지난 2월20일 경찰은 전국 기동순찰대와 형사기동대를 출범시켰다. 기동순찰대는 ‘범죄 예방, 중요 사건 대응, 국가 중요 행사 지원 등’을 담당하는 부서로 고소·고발 건을 처리하지 않고 민원 업무도 하지 않는다. 형사들로 구성된 형사기동대 역시 ‘선제적 형사 활동’을 위해 첩보나 인지수사만 담당한다.
“치안도 중요하지만 지휘부가 빠뜨린 질문이 하나 있다. 신설된 기동순찰대·형사기동대 사람들이 이미 맡고 있던 사건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 사람들이 앞으로 맡아야 할 새로운 사건들은 어디로 갈까? 갈 곳이 없다. 수사 부서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고스란히 나눠 짊어져야 한다. 수사 부서를 탈출 못한 사람만 ‘바보’가 되는 거다.” 민관기 전국경찰직장협의회(직협) 위원장의 말이다. 직협은 2019년 말 공무원직장협의회법이 통과되면서 만들어진, 경찰 내 노조와 비슷한 단체다.
민관기 위원장은 신설된 기동순찰대·형사기동대 규모가 결코 작지 않다고 강조한다. 지난 2월 출범 당시 기동순찰대는 전국 2668명, 형사기동대는 1335명으로 총 4003명에 달했다. 기동순찰대·형사기동대는 시·도 경찰청 소속이라 일선 서에서 인력이 부족해도 서장이 융통성 있게 인력을 배분할 수가 없다. 지난 4월 직협이 경찰관 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동순찰대·형사기동대 신설 등의 조직개편에 대해 ‘매우 불만족’이라고 응답한 이들이 65.6%였다. ‘불만족’도 22.6%였다. ‘보통’은 8.9%, ‘만족’은 2.9%에 불과했다. 도합 88.2%에 달한 불만족의 이유는 ‘현장 인력 감소(80.2%)’ ‘현장 업무량 증가(11.1%)’ ‘신설 조직 불필요(5.1%)’ 순이었다.
서울 지역 경찰서에서 수사 업무만 20년 넘게 해온 한 경찰관은 “작년에만 해도 수사관마다 평균 10건 초반, 많으면 30건대를 수사했다. 그런데 지금은 기동순찰대나 형사기동대로 간 사람들의 일까지 나누어 맡다 보니 사건을 잘 빼는(처리하는) 사람이 50건대, 많으면 70건대다. 여기에 매주 6건씩 새로운 사건이 떨어진다. 그러니까 주당 최소 6~7건, 하루에 한 건은 쳐내야 한다는 뜻이다. 밑 빠진 독, 아니 점점 밑이 커지는 독에 물 붓기다. 사정이 이러니 베테랑들은 도망가고 지금 남은 수사관의 70~80%가 3~5년 차다. 경험이 부족한 저연차들이 매주 느끼는 압박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스트레스로 장이 꼬여 응급실에 실려간 직원도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7월18일 관악경찰서에서 근무하다 스스로 세상을 떠난 ㄱ 경위도 수사팀에 온 지 겨우 6개월 차였다. 직협에서 자체적으로 파악한 바에 따르면, ㄱ 경위가 발령을 받았을 때 전임자로부터 넘겨받은 사건은 53건이었고 신임수사관 교육을 받는 3주 동안에도 사건이 매주 배당됐다. 쏟아지는 업무를 처리하다 체중이 10㎏ 넘게 빠진 ㄱ 경위는 따로 건강검진을 받기도 했다.
해법 마련하겠다는 경찰청, 현장은 냉랭
특히 ㄱ 경위는 지인에게 ‘서울청에서 하달되는 장기 사건 미처리 관련 메시지가 매주 수사팀 단톡방에 올라오는 게 부담스럽다’라고 자주 이야기했다고 한다. 결국 숨지기 하루 전인 7월17일 인사고충 처리가 이루어져 타 부서 발령이 결정됐으나, 그에 앞서 7월22일 ‘전출 전 자기사건 책임수사’와 관련해 서울경찰청에서 관악경찰서 점검이 예정돼 있었다. ㄱ 경위는 자신이 담당하던 사건 때문에 동료들과 팀장, 과장, 서장에게 영향이 갈 것을 걱정해 지인에게 “월요일(점검이 예정된 7월22일)이 두렵다” “월요일이 안 왔으면 좋겠다”라고 여러 번 말했다. 결국 ㄱ 경위는 월요일이 오기 전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일선 경찰관들이 가장 분노하는 지점은 바로 이 ‘처리 실적’ 압박이다. 경찰청 지휘부에서 업무량이 늘어난 현장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오히려 처리 실적을 늘리라고 몰아세운다는 것이다. “매주 금요일 평가 결과를 공개하면서 독려 문자를 보내고, 장기 사건 처리 하위 10% 팀장 탈락제를 운영하고 있다. 3개월, 6개월, 1년 이상 사건이 몇 건인지 매달 점검하면서 왜 건수가 안 줄었는지 사유서를 쓰라는 거다. 장기 사건은 기록이 두껍거나(많거나) 죄명이 큰 사건이다. 이런 사건은 위에서 닦달한다고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는다. 이 사실을 모른다면 무능한 거고, 알면서도 몰아붙이는 거면 나쁜 거다. 이러든 저러든 지휘부에 대한 기대가 바닥날 수밖에 없다.” 수사 경력 10년이 넘는, 한 지역 경찰서 소속 수사관의 말이다.
그러나 실적을 강조하는 경찰청의 기조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뇌출혈로 쓰러진 경찰관이 세상을 떠나고 또 다른 경찰관은 한강에 투신을 시도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난 7월26일 늦은 저녁, 경찰청은 ‘현장 근무여건 실태진단팀’을 꾸려 해법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으나 일선에서 근무하는 경찰관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사흘 뒤인 7월29일 국회에서 열린 조지호 경찰청장 후보자 청문회에서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수사 실적 압박에 대해 지적하자, 조 당시 후보자는 “국민이 경찰에게 수사권을 준 이상 국민은 공정하고 신속하게 수사가 이루어지기를 원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신속하게 하는 방법이 중요한데 비슷한 여건인데도 경찰서별로 장기 사건 차이가 있는 원인에 대해 진단을 해보고 개인 차가 있으면 사건 배당을 달리하라(는 취지였다)”라고 답했다.
서울 지역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경찰청장 후보자 청문회를 지켜본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정말 현장 상황을 아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2014년에 도입됐다가 성과가 없어 유명무실해진 기동순찰대를 신설하는 조직개편을 기획했던 사람도 조 청장(당시 경찰청 차장)이다. 그때도 내부 반대가 많았다. ‘경찰이 지나가고 나면 칼을 꺼내지 누가 경찰이 있을 때 칼부림을 하느냐’ ‘수사 인력도 없는데 실효성 없는 순찰만 늘리는 게 정말 국민을 위한 길이냐’ 등등. 그런데 결국 밀고 나갔다. 앞으로도 별반 달라질 것 같지 않다.”
8월12일 열린 취임식에서 조지호 청장은 ‘국민’을 스물다섯 번이나 언급하며 “예방 중심의 경찰 활동을 강화해 국민이 체감하는 안전도를 높여가겠다”라고 다짐했다. 민관기 위원장은 “경찰관이 업무에 치여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못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국민의 안전과 행복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지키려면 경찰관의 안전과 행복도 지켜져야 한다. 경찰관도 ‘국민’이다”라고 말했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업무 압박에 시달렸던 ㄱ 경위는 승진 임용식이 끝난 뒤 어머니와의 메시지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올해 제일 행복해야 하는 날인데 (…) 지금 부서만 안 왔어도 승진식 때 엄마도 부르고 했을 건데, 기쁘지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