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대학병원 응급실 앞에 게시된 진료안내문. ⓒ시사IN 조남진
서울 한 대학병원 응급실 앞에 게시된 진료안내문. ⓒ시사IN 조남진

“어느 병원을 가셨죠?(나경희 기자)” “울화통이 터집니다(이은기 기자).” 이번 주 커버스토리를 쓴 두 기자에게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들은 소감을 물었을 때 나온 대답이다. 윤 대통령은 8월29일 국정 브리핑 및 기자회견에서 의료 공백 위기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의료 현장을 가보시는 게 제일 좋을 거 같습니다. 지역의 종합병원들 이런 데 좀 가보시고.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일단 비상진료체제가 그래도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고···.”

〈시사IN〉 이번 호 커버스토리에는 대통령이 말한 그 ‘의료 현장’ 이야기를 담았다. 한 119 구급대원은 응급환자 이송 현장에서 직접 겪은 일을 적은 편지를 〈시사IN〉 편집국에 보내왔다. 한 의대 본과생은 의대 증원 발표 7개월간 목도해온 의사·정부 간 ‘치킨 게임’을 보다 못해 호소문 한 통을 써서 기고했다. 나경희·이은기 기자는 전국의 대학병원, 중소병원, 공공병원, 보건소, 동네병원, 소방서 등을 돌아보며 현장의 목소리를 취재했다. 수집된 팩트들은 모두 한 단어를 가리키고 있었다. ‘붕괴.’

소아의 손가락이 절단된 상황에서 받아주는 응급실이 없어 한참 동안 수지 접합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 길 위에서 전화를 돌리는 구급대원, 빠진 동료의 자리를 채우느라 끝없는 야간 당직에 시달리는 응급실 의사, 과다 출혈로 의식까지 잃었지만 수술을 거부당한 환자, 약식 교육만 받고 곧장 전공의 업무에 투입된 PA 간호사들은 말했다. “너무 무섭다” “아수라장이다” “환자에게 너무 미안하다” “나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사실 취재까지 할 것도 없다. 가만히 앉아 들려오는 소식만 접해도 의료 현장 분위기를 모를 수 없다. 이마가 찢어진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병원 22곳에서 수용을 거부당했고,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부친은 구급차를 타고 한참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가 겨우 병원을 찾았지만 40여 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시사IN〉 편집국 한 기자의 가족도 최근 수술해 후유증으로 고열이 오르는데도 치료해줄 의사를 찾지 못해 닷새간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해야 했다. 환자 치료를 거부하며 한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정부가 시스템을 이렇게 만들어놔서요, 저희도 뭘 해줄 수가 없네요.”

이런 상황에서 “현장 실체보다 과장된 내용들이 과도하게 나와 있고 특정 사례가 부각되고 있다(대통령실 관계자)”라거나 “중요한 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고통스러운 개혁의 과정을 겪고 있다는 것(한덕수 국무총리)”이라는 발언은 도대체 어떻게 나올 수 있는 걸까?

이은기 기자는 의료 붕괴 현장 취재를 하며 가장 안타까웠던 점이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게 만드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환자도 구급대원도 의사도 간호사도 의대생도 전공의도 의대 교수도,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게 만드는 악순환이 해결되지 않으면 그 피해는 오롯이 국민의 몫이다. 그러니 살기 위해서라도, 이제 제발 그만 미워하게 해달라. 국민도 대통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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