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구급대원의 구급차 이송 기록지에는 지난 2월부터 7개월간 이어진 의료 공백 탓에 응급환자들이 겪는 고초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중 한 사례다. 한 여성이 폭행을 당해 정수리에 2~3㎝ 열상, 후두부 열상, 팔뚝에 찰과상을 입었다.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다. 구급차에 탄 환자는 온몸이 아프다고 계속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갈 수 있는 응급실이 단 한 곳도 없었다. 구급대원은 서울과 경기 지역 17개 병원에서 환자 진료가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 119 구급상황관리센터에 요청, 재요청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2시간을 떠돈 끝에도 병원을 찾지 못해, 상처만 소독한 환자를 집으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구급차에서 내리던 도중 환자가 갑자기 의식을 잃었다. 그는 심정지 상태가 되어서야 병원에 옮겨졌다.
서울의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 A씨는 “(앞의 사례처럼) 머리를 다친 환자가 갈 응급실이 없어서 2시간을 헤매다 심정지로 발견되는 경우는 이전에 극히 드물거나 없던 일이다. 우리 응급실도 병상에 여유가 있었다면 받았을 거다. (2월 이후에는) 이런 케이스가 한 달에 한두 건 정도는 발생한다. 답답하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8월29일 국정 브리핑에서 “의료 현장에 가보시라. 여러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일단 비상진료체제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의료 공백 7개월, 대통령실의 말처럼 현재의 위기는 ‘관리 가능한 차원’일까?
장면 1. 무의촌이 되어가는 응급실
올해 2월 응급의학과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이 떠난 뒤, 병원은 응급실 침상부터 줄였다. 서울의 한 수련병원은 20여 개이던 응급실 병상을 절반 가까이 줄였다. 전공의와 나눠 하던 일을 전문의가 도맡게 되면서 업무 부담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원래도 인력이 부족해 겨우 버텨오던 응급실이었다. 여기에 전공의 이탈이 7개월째 이어지면서, 응급실에 남아 환자를 돌보던 의사들에게 과부하가 걸렸다. 결국 순천향대 천안병원처럼 문을 아예 닫거나 일부 시간은 운영을 중단하는 응급실이 생겼다.
응급실에 도착한 환자의 병력을 듣거나 시술 동의서를 받고 간단한 응급처치를 하는 건 보통 전공의 몫이었다. 전문의는 전반적인 환자 상태를 파악하고 숙련이 필요한 어려운 시술을 맡는 식으로, 응급실 업무가 분담되었다. 지금은 응급실에 남은 소수의 전문의가 고스란히 그 모든 업무를 챙겨야 한다. 응급환자들을 예전과 같이 받을 수 있는 역량이 떨어졌다. ‘비상진료체계 내부 지침’을 만들고, 받을 수 있는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를 구별했다. 병원마다 상황은 제각각이지만 전공의 비중이 높은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일수록 타격이 더 컸다.
겨우 응급실 문턱을 넘어도 위태롭긴 마찬가지다. 이수훈 제주대 의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평소라면 응급실에서 네다섯 명이 하던 일을 이제는 한두 명이 하게 됐다고 말했다. 혼자 응급실을 지키는 날도 부지기수다. 이 교수는 “응급실, 특히 대학병원 응급실은 환자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상황이면 제일 밑에서 막아야 하는 그물망 같은 존재다. 그런데 지금 응급실은 언제든 ‘무의촌(의사나 병원이 없는 지역)’이 될 수 있다. 심정지 환자가 오면 최소 30분은 소생실에서 그 환자에 매달려 있어야 한다. 그 시간 동안 혈압이 떨어지는 환자,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환자처럼 또 다른 응급환자들이 있는 바깥은 무의촌이 되고, 아무도 봐줄 사람이 없다. 환자에 대한 판단을 ‘크로스체킹(교차 검증)’해줄 동료도 없다. 이런 상황이 굉장히 두렵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응급의료체계 자체가 붕괴되고 있다. 아수라장이다.” 서울에서 일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A씨의 말이다. A씨는 하루 평균 100여 통에 이르는 응급실 수용 문의 전화를 받는다. 서울 다른 권역뿐만 아니라 경기·강원 지역에서도 전화가 온다. 응급환자는 중증도 분류체계(KTAS)에 따라 세 가지 응급의료기관으로 분산된다. 중증도에 따라 지역응급의료기관, 지역응급의료센터, 권역응급의료센터 순이다. 그중 권역응급의료센터는 중증 응급환자를 중심으로, 권역 내 응급환자에 대한 최종 진료가 가능하도록 지정된 기관이다. 그러니까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권역 내’에서 응급환자를 진료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수훈 제주대 의대 교수는 “지금은 세 종류 기관 모두 환자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인 때가 꽤 잦다. 그래서 (응급환자가) 자주 권역을 넘나드는데 이 상황 자체가 말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응급환자가 권역을 넘나드는 건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지만 지난 7개월을 거치면서 이 현상이 더욱 극심해져, 응급의료체계는 더욱 “아수라장”이 됐다.
장면 2. 호흡곤란 아이를 도울 수 없다
“너무 무섭다.” 충청 지역의 한 달빛어린이병원(야간·주말 진료를 하도록 정부가 지정한 소아 의료기관)에서 야간에 1차 외래진료를 보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B씨는 이 말부터 꺼냈다. B씨는 혼자 일한다. B씨가 일하는 병원은 피검사나 엑스레이 촬영은 가능하지만 응급환자 치료는 어렵다. B씨가 주로 보던 환자도 장염이나 감기 환자처럼 간단한 처방이 필요한 환자였다. 그런데 인근 대학병원 소아응급실이 문을 닫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2주에 한 번꼴로 중환자를 실은 구급차가 갈 곳을 찾지 못해, B씨 병원까지 밀고 들어온다. B씨는 “내가 능력이 되면 치료를 하겠지만, 대개 할 수 없는 일들이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8월18일 일요일, 숨을 잘 쉬지 못하는 여섯 살 아이가 구급차에 실려왔다. 엑스레이를 찍으니 폐에는 물이, 가슴과 폐 사이에는 종양이 가득 차 있었다. 림프종(혈액암의 일종)이 의심됐다. B씨 병원에서는 폐에 찬 물을 뺄 수도, 항암 치료를 할 수도 없었다. 숨을 헐떡이는 아이가 치료받을 수 있는 큰 병원으로 당장 옮겨야 했다. 충청권 광역응급의료상황실 담당자와 함께 3시간 동안 일일이 병원에 전화를 돌린 끝에 경기도 수원 아주대병원 응급실로 전원을 보낼 수 있었다. 이미 3시간을 기다린 여섯 살 환자는 산소호흡기를 달고 의사를 만나기 위해 2시간을 더 달려야 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C씨는 “응급환자는 시간 싸움이다. 전원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기들의 생명이 생존에서 멀어진다”라고 말했다.
B씨는 돌아올 추석 연휴가 두렵다. “지난번에는 운이 좋아서 아주대로 환자를 보냈지만 ‘추석 연휴에 중환자가 오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너무 크다. 지금은 전원을 보내고 싶은 의사가 응급센터 담당자 한 명과 함께 병원 한 곳 한 곳에 전화를 걸어 읍소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정도면 거의 응급의료체계가 없다고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소아응급실이 제발 돌아왔으면 좋겠다.”
장면 3. 수술 부위 꿰매는 PA 간호사
부산의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일하는 20년 차 간호사 D씨는 6월부터 ‘공동 PA 간호사(Physician Assistant·진료지원인력)’로 보직이 바뀌었다. 진료과별로 배치되는 기존 PA 간호사와는 달리 진료과를 구분하지 않고 업무가 주어지는 탓에 ‘공동’이라는 표현이 추가됐다. 일선 병원에서는 PA 간호사가 하나의 직군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D씨가 일하는 병원에는 애초 진료과별로 전담 PA 간호사가 100명 정도 있었다. 주로 전공의들이 기피하는 과에서 수술 어시스트나 외래진료, 병동 회진 등의 업무를 해왔다. 지난 2월 이후, 정부는 시범사업을 통해 PA 간호사들의 존재를 임시로 인정하고 전공의들이 하던 업무를 대신하게 했다.
D씨 병원에서도 ‘한시적’이라는 이름을 붙여 병동 간호사를 추가로 공동 PA 간호사로 차출했다. 자원하는 간호사는 거의 없었다.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환자를 만나고 간호하던 이전 업무와 달리 ‘한시적 PA’ 업무 범위는 상황에 따라 수시로 바뀌었다(8월28일 PA 간호사 합법화를 골자로 한 간호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업무 범위는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한다고만 규정됐다). 종전의 전담 PA 간호사들과 달리 체계적인 훈련도 없이 약식 교육 뒤 곧장 투입됐다.
D씨가 새로 맡은 업무는 진료과를 구분하지 않고, ‘처방을 내달라’는 요청이 오면 처방을 내는 일이다. 수술실에 들어가는 동료 PA 간호사는 수술 부위를 꿰매기도 한다. 동맥혈 채혈, 비위관(콧줄) 삽입 등 시술을 지원하는 PA 간호사도 있다. 원래 전공의가 주로 하던, 환자 안전과 직결되는 일이다. D씨는 그간 꾹 눌러두었던 울분을 토로했다. “일을 하면서도 ‘내가 해도 되나’라고 생각하는 간호사들이 많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에 대한 불안감도 있다. 우리가 새로운 업무에는 전문적이지 않다 보니 환자에게도 미안한 마음이다. 전공의 이탈로 모두 다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 이전까지는 환자랑 보호자를 직접 마주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일했다. 빨리 원부서로 복귀해서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이 사태가 빨리 좀 해결됐으면 좋겠다.”
장면 4. “나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김동은 계명대동산병원 교수(이비인후과)는 지난 7개월간 일이 부쩍 늘었다. 이전까지 응급실 당직은 전공의들이 섰다. 응급실에 환자가 오면 이비인후과 전공의가 먼저 확인한 뒤, 응급수술이 필요한 경우 담당 교수를 호출하는 식이다. 전공의가 떠난 뒤 5일마다 24시간 당직을 서는 김 교수의 일주일은 이렇다. 일요일, 24시간 당직(오전 8시~익일 오전 8시)을 선다. 당직을 마친 월요일에는 곧장 외래진료가 있다. 화요일 오전은 외래진료로, 오후는 신규 입원환자 처리 등 다음 날 수술 준비로 바쁘다. 수요일은 아침 8시부터 수술이 잡힌다. 목요일엔 또 외래진료가 있다. 금요일, 또다시 24시간 당직 순번이 돌아온다. PA 간호사가 없어 야간 응급수술은 혼자 진행한다. 틈틈이 다른 과에서 협진 의뢰 온 환자도 봐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학병원 교수들도 점차 소진되고 있다. 신규 환자나 응급환자를 받기가 꺼려질 수밖에 없다. 경기 지역 권역응급의료센터 소속 응급의학과 전문의 E씨는 “갑작스러운 응급 중증 환자를 감당하는 게 (병원에서) 가장 에너지 소모가 큰 일이다. 그러다 보니까 배후 진료과가 일단 응급환자를 받지 않으려 한다”라고 말했다.
김동은 교수가 5월23일 새벽 응급수술을 한 후방 비출혈(코피) 환자는 수술할 의사를 만나기까지 일주일이 걸렸다고 했다. 5월17일 심한 출혈이 난 뒤부터 집에서 가장 가까운 2차 종합병원, 대학병원, 이비인후과 수술 전문병원 등 병원 다섯 곳을 찾았지만 수술을 해주겠다는 곳은 없었다. 그사이 내내 피를 흘렸다. 사흘이 지나고 5월20일, 구급차를 타고 다시 찾아간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과다 출혈로 의식까지 잃었지만, 급하게 수혈을 받았을 뿐 이비인후과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수술을 다시 거부당했다. 5월23일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응급수술을 받고 회복할 수 있었다. 일주일간 피 흘리는 아들을 지켜본 환자 어머니는 목소리를 높였다. “의사 파업 때문에 생사람 많이 죽겠습니다!”
김동은 교수는 “배후 진료과 의사들이 있어야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그나마 버틸 수 있다. 응급의학과가 응급환자를 받고 싶어도 이어서 응급 수술과 입원 치료를 맡아줄 배후 진료과 전문의가 충분하지 않다면, 안 그래도 응급실 의사가 부족한 상황에서 더 환자를 받기 어렵다. 그러려면 배후 진료과 의료진이 번아웃된 채 병원을 떠나지 않도록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꾸역꾸역 버티던 대학병원 교수들도 하나둘 의료 현장을 떠나고 있다. 이수훈 응급의학과 교수는 이해가 된다고 했다. “다들 버티다 버티다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 응급실 야간 당직을 많이 서다 보면 ‘나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중앙응급의료센터는 각 응급실 상황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온라인 종합상황판’을 운영한다. 8월29일 현재 온라인 종합상황판에는 각 병원마다 의료진 부족으로 응급실 진료가 어렵다는 공지가 올라와 있다. ‘응급실 중환자 과다로 모든 환자 수용 불가합니다’ ‘이비인후과, 성형외과, 정신과 인력 부족으로 응급실 진료 불가능’ ‘응급실 의료진 부족으로 중증 외상환자 수용 불가’···. 직접 확인해본 그 어느 의료 현장에서도 대통령실 말처럼 “관리 가능한 상황”이라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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