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금방 다녀올게요 .“ 아파트 엘리베이터 문이 다 열리기 전 택배 박스를 든 권서우씨(가명)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투둑‘ ‘찰칵’. 박스를 놓고 배송 인증 사진을 찍은 다음 뒤돌아 달린 권씨가 엘리베이터에 들어서는 순간, 닫히는 문에 그만 몸이 부딪히며 울리는 꽤 둔탁한 소리가 건물 내에 퍼졌다. 그의 스마트폰은 0시2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쿠팡 퀵플렉스(쿠팡 CLS와 계약한 특수고용직) 권서우씨는 쿠팡 새벽 배송 일을 하고 있다. 처음 이 일을 할 때 노동강도가 엄청났던 그 느낌을 잊지 못한다. 저녁 8시쯤 시작해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이어지는 새벽 배송 업무는 주 6일, 365일 쉼없이 돌아간다. 이제는 제법 일이 몸에 익어 일하는 시간이 좀 단축되었다. 라우트(배송 구역)에 지번(빌라단지) 말고도 오피스텔과 아파트가 좀 섞여 있어, 다른 기사들도 “괜찮은 라우트“라며 포기하지 말라 했다.
오전 7시 퇴근하면 아이들을 등교시킨 뒤 잠자리에 든다. 늦은 오후 깨어나 아이들과 저녁을 먹으며 다시 출근을 준비한다. 주말을 온전히 쉬거나 평일 휴가를 내는 건 전적으로 자유이지만 쉽사리 쉬지 못한다. ‘등급’ 때문이다. 정해진 배송 업무를 완료하는 것을 뜻하는 수행률이 쿠팡 배송기사들의 등급으로 표시된다. 등급이 떨어지면 사실상 자신의 라우터에서 배송 업무가 사라지는 ‘클렌징(배송 구역 회수)’을 당한다. 사실상 해고와 다름 없다.
배송이 많은 주말을 피하거나, 남들과 달리 주 5일만 일하거나, 배송 사고가 잦아지면 수행률이 떨어지고 그러면 결국 클렌징되기 때문에 새벽 배송 노동자들은 쿠팡의 시스템에 자신의 삶을 갈아 넣을 수밖에 없다. ‘계약에 따른 자율’이라는 입장만 되풀이하는 쿠팡의 주장과 달리 배송 기사들은 그리 자율적이지 못하게 노동하고 있다.
새벽 3시. 쿠팡 사용자들이 지난밤 12시 직전에 주문한 신선식품이 쿠팡캠프(물류센터)에 밀려 들어왔다. 배송 물품들을 자신의 트럭으로 올리고 땀으로 범벅되어 운전석으로 돌아온 그에게 물었다. 이렇게 매일 야간에, 제대로 쉬는 날 없이 일하는 게 괜찮냐고. 그는 답했다. "그래도 얼마 전 경기 남양주, 제주 등에서 쿠팡 CLS와 계약해 일하던 노동자들이 사망한 일 이후 분위기가 좀 바뀐 것 같아요. (대리점의) 독촉이나 재촉이 많이 사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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